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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차리며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20년 가까운 나이를 먹었다. 그 시간 동안 남들보다 몇 십 배, 많으면 몇 백 배의 공연을 봤다. 프레스 티켓을 받고 공연장에 입장하면 객석에는 지인들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오늘 공연이 어떨까, 같은 한담을 나누며 시작을 기다렸다. 좀 친한 뮤지션의 공연이면 대기실에 놀러가 수다를 떨기도 했다. 이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계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임하는지 알 지 못했다. 애써 알려하지도 않았다. 듣기는 했으나 피차 일에 지나지 않았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것도 아니고, 식사 중인 밥상에 제 숟가락 들고 끼어앉는 인생을 살았다. 얼마전,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공연을 하나 올렸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내내 걱정이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계획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공연과 페스티벌들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멈추지 않았다. 특히 10월 초에 발표된 거리두기 연장안으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소된 건, 공연계의 가장 두렵고도 아픈 뉴스였다. 우리가 하는 공연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어쨌든 막을 올릴 수 있었다. 공연이란 밥상을 차리는 일을 함께 해야했다. 스스로 크고 작은 공연을 몇 개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엄중한 의미에서의 공연은 아니었다. 수십에서 수백명이 움직이는 시스템 바깥의 작은 이벤트였을 뿐이다. 첫 날, 평소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공연장으로 출근했다. 아예 새벽부터 나와서 회사에서 공연장으로 짐을 나르는 직원들에 비하면 늦은 시간이었지만, 페스티벌을 제외하고 그렇게 빨리 공연장을 방문해보기도 처음이었다. 사람과 장비로 가득찬 모습만 보다가 아무 것도 없는 무대와 객석을 보니 그리 광활해보일 수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나갔다. 입구 주변에 포스터와 홍보물을 붙였다. 머천다이즈를 판매할 테이블을 설치하고 물품을 비치했다. 넓디 넓은 객석에 의자를 깔았다. 창고에서 수백개의 의자를 가져왔고, 하나 하나 펴서 오와 열을 맞춰 깔았다. 그리고 종이에 인쇄된 객석 번호표를 일일히 테이프를 동원해서 의자마다 붙였다.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책상에 앉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이뤄지지만 이 날은 어떤 디지털도 없었다. 아니 디지털은 커녕 기계 하나 없이 몸과 손을 동원해서 해야했다. 평소 하루에 걷는 게 1만2000보 내외인데, 공연 시작 한참 전에 1만5000보를 걸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공연장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말이다. 공연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압도적인 인력과 압도적인 수작업의 총체다. 그 와중에 무대에선 리허설이 진행됐다. 코로나19 이전 가끔 리허설을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사운드를 체크하고 동선을 짜는 등, 말 그대로 ‘일’을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 작업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이 날은 달랐다. 모두가 오랜만에 서는 무대이기도 했지만, 옛 친구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건 더욱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출연진 모두 그저 연주와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리허설 마저 설레여했다. 김현철, 장필순, 박학기, 함춘호, 유리상자, 동물원, 조규찬이 이틀에 걸쳐 무대에 오른 이 공연의 이름은 <아카이브 케이온:우리, 지금 그 노래>. 과거 동아기획과 학전소극장의 주역들이 함께 한 공연이었다. 둘째 날 리허설에서 모두 함께 부르는 ‘내일이 찾아 오면’을 위해 목소리를 맞추던 장필순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 진짜 재밌게 하자. 나 봐. 계속 웃잖아” 공연이 끝난 후, 동물원 멤버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작은데서라도 자주 공연을 해야겠어” 모두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공연이었다.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출연자든 관객이든,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철저하게 배척받은 ‘콘서트’라는 시간이 비로소 다시 돌아온 것이다. 비록 뒤풀이는 못했지만, 모두에게 여운은 깊었을 것이다. 마치 2분 정도 물에 빠졌다가 다시 호흡을 하는 이가 느낄 법한, 어떤 간절함과 소중함도 찾아왔을 것이다. 위드코로나 시대의 코앞에서의 절실한 예습이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추모조차 차별·제한받는 자영업자들최근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자영업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위드코로나'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자영업자들도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난달 16일 길거리로 나왔다. 분향소는 죽은이의 넋을 기리고 조의를 표하도록 향로에 향을 피우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상중에 한 곳만 설치할 수 있는 빈소와 달리 여러 곳에 둘 수 있다. 대통령, 연예인 등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다. 최근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 자영업자 분향소가 설치됐다. 코로나19 방역 기준에 따라 추모 인원도 제한됐고, 우려했던 집단감염 등도 발생함 없이 별탈 없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분향소 설치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후 2시쯤 설치될 예정이었지만, 오후 9시가 넘어 설치됐다. 분향소 설치 과정에서 자영업자 비대위와 경찰이 네 차례나 대치하면서다. 김기홍 비대위 공동대표는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막자 "이틀간 제보받은 자영업자 사망 사례가 22명인데 분향소 설치까지 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자영업자는 분향소도 설치하면 안 되느냐"고 호소했다. 경찰은 “관할 구청에서 도로법과 감염병법 위반이 될 수 있으니 설치를 차단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력을 투입해 막았알 뿐”이라고 밝혔다. 추모 인원 제한에 대해서도 “현재 분향소 내 상주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3명이어서 한 장소 내 4명까지 모일 수 있는 방역수칙을 적용해 1명씩 추모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논란이 있고 한 달이 조금 지난 25일 또 한 번의 기습 분향소가 설치됐다. 우리공화당이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 추모 분향소를 마련했다.  앞선 논리라면 경찰은 감염병 확산 우려가 있어 분향소 설치를 막았어야 한다. 하지만 커다란 시청광장에는 헌화를 위해 국화를 들고 서 있는 시민들이 광장을 반 바퀴 둘러싸고 있을 만큼 많은 인원이 모였고, 경찰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사회제도나 규범을 근거로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일탈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결국 범죄자가 되고 만다는 '낙인 이론'이 있다. 경찰은 자영업자들이 집회를 할 것이라고 짐작해 집회를 막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했다고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누구에게나 같은 시각으로 평등하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때다. 특히나 공공의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경찰들은. 표진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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