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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음모론'과 미통당의 '의혹제기' 음모론의 백과사전적 정의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함. 일반적으로  격동기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많이 유포되는 경향이 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2020년 5월 29일 현재, 대한민국 국민인 당신이 ‘음모론’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떠올려 본다면, 아마도 ‘김어준’이라는 이름 석자가 가장 먼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혹은, ‘위안부’, ‘이용수’, ‘윤미향’, ‘정의연’, ‘민경욱’, ‘세월호’, ‘가로세로 연구소’, ‘유튜브’, ‘가짜 뉴스’ 등등이 연상될 수도 있다.  이것은, 방송인으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는 김어준씨가 그동안 실제로 각종 음모론을 제기해왔는데 그 중 일부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고, 또 상당수는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이론으로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예를 들어 김어준은 기존 언론이나 권력이 침묵하고 있을 때,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리기’에 열중하였는데 이때 내세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슬로건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회사 ‘다스’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였고, 결국 내밀하게 가려져있는 진실을 파헤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의 말에 신뢰를 갖게 되었고 그가 주장을 하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후, 그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미투 공작설, 대선 개표조작설 등 관련 의혹과 음모론 등을 끊임없이 양산하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데, 지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당선자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연일 미디어에서 윤 당선자를 향한 의혹을 쏟아내자, 김어준의 음모론이 다시 한 번 등장하면서 이슈가 되고 있다. 즉, 그는 이용수 할머니가 순수하게 정의연과 윤 당선인에 대해 분노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윤 당선인이 국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떤 의도를 가진 단체와 권력이 그 배후에서 할머니를 조종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뉴스공장' 방송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에 대해 그는,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이용수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에서 정신대 할머니들로만 운동을 하는 게 부족하니 위안부 할머니를 거기에 넣어서 근 30년 간 우리를 끌고 다닌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정신대와 위안부 두 단어는 혼용해서 썼다. 초기에 단어를 구분하지 않을 때 출범해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라는 단체명이 됐지만,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만 집중했는데, 왜 정신대 문제만 신경 쓰지 위안부를 끌어다가 이용했냐는 건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규정했다. 이어서 “그 연세 어르신들이 쓰는 용어가 아니다. 기자회견문은 7, 8명이 관여하여 협업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문에 나온 '소수 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정치권 용어’인데, 누군가 자신들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할머니께 드린 것”이라며 자신이 내세우는 음모론의 근거를 대기도 했다.  이와 같은 김어준의 음모론이 핫 이슈로 확산되자, 대한민국은 김어준을 지지하며 이용수 할머니의 배후세력을 찾으려고 하는 쪽과, 무책임한 음모론으로 물 타기를 한다며 김어준을 비난하는 쪽으로 나뉘어 시끄러워졌고, 각 진영의 대표적 스피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어준이 하면 ‘음모론’이고, 미통당(미래통합당)이 하면 의혹제기냐”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진중권 전 교수는 그 반대쪽에 서서 “방송인 김어준씨는 ‘걸어 다니는 음모론자’다. 킁킁 냄새 맡는 걸 좋아하니 방송 그만두고 인천공항에서 마약탐지견으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비꼬았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그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지만 모든 사건이나 사회 현상을 명쾌하게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 음모론이 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다. 음모론은 사건의 애매한 요소들을 모두 하나의 블랙박스 속에 담아 버리고 더 이상 상황을 애써 해석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인지적으로 상황을 매우 단순화시키면서도, 그 음모를 꾸민 사람이나 대상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인지적 단순화를 합리화하고,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음모론이 이중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음모론이란 지적인 욕설이 되었다.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다."라고 말하면서 역기능을 주창하기도 했지만, 음모론은 감추어진 사건을 파헤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순기능을 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음모론 중에 미국 정부가 매독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가난한 흑인들을 실험대상으로 했었다는 것이 있었는데, 이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관련 유족에게 사과를 하였고, 대중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김어준의 음모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 못한다. 이를 판단할 정보가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기에, 일단 그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할 것 같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끔찍하고 기괴한 ‘뉴 노멀’의 시대요즘 자주 보이는 단어다. ‘new normal’(뉴 노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새로운 보통’쯤일까. 사전적 의미가 그렇지 의미적 사용은 ‘새로운 기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선언 수 개월 지났지만 아직도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전염병 하나가 시스템을 바꾸는 중이다. 시스템은 우리 삶 그 자체다. 삶 자체가 바뀌면서 기준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우선 ‘뉴 노멀’ 시대에 가장 예민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곳은 문화계다. ‘비대면’이 핵심 제시어가 되면서 ‘뉴 노멀’ 시대에 진입했다. 고사 직전 극장업계는 인력을 줄이고 무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소비자의 불안감 해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차악을 선택 한 것이다. 이 선택은 업계 고용 불안을 가져왔다. 극장 업계가 희망 퇴직을 실시하며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를 떠났다. 아쉬운 건 그들과의 인연이 아니다. 삶의 보금자리를 다른 형태의 삶을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변화가 아쉬울 뿐이다. 이건 ‘노멀’도 ‘뉴 노멀’도 아닌 그냥 ‘강제적 기브업’일 뿐이다. ‘뉴 노멀’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기준이 아직은 낯설다. 여기에 적응하기까지 겪어야 할 진통은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단 게 더 두렵다. 얼마 전 IPTV를 통해 1998년 개봉작 영화 ‘가타카’를 다시 봤다. 유전자가 사회적 기준이 되는 세상을 그린다. 유전자의 우성과 열성 여부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이 규정되고 지배 받는다. ‘가타카’ 속 사회에선 개인 유전자가 신분증명서가 된다. 피 한 방울이 모든 소통의 시작이고 끝인 세상이다. 22년 전만 해도 이 영화는 판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영화가 그려내는 세상에 코웃음을 칠 수 없다. 불과 22년 만에 세상은 ‘가타카 실사판’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전염병 확산이 증거다.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강한 청년 세대는 ‘가타카’ 속의 우성인자 집단이다. 이들은 타고난 유전적 요소로 인해 사회 활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활동성이 보장된 이들은 사회 구조 속 피라미드 상층부에 자리잡는다. 반면 ‘가타카’ 속에서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열성인자 집단은 우리 사회 중-장년층, 특히 노인 세대와 오버랩 된다.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의 활동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사회적 제약을 ‘강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닮고 있다. 소통의 창구인 입이 마스크로 가려진 지금이다. 귀는 열려 있다지만 상대 목소리를 듣는지 안 듣는지 알 수 없는 지금이다. 한편에선 “나는 걸려도 안 죽어”란 자신감에 차 있고, 다른 한편에선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두렵다. 기존 ‘노멀’이 더 이상 ‘노멀’하지 않게 돼 버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앞다퉈 ‘뉴 노멀’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등교 개학이 아닌 온라인 개학이 4차 혁명의 시작이라며 자화자찬한다. 비대면을 보장한 무인 시스템이 사람을 대신해야 오히려 안심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준, ‘뉴 노멀’이 끔찍하고 기괴하게 느껴지는 건 진정으로 나 혼자 뿐인가.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