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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13 (수요일)

다시 임금을 생각한다과거 노사관계의 화두는 임금이었다.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사업장마다 임금인상이 핵심 요구였고, 단체행동을 무기로 높은 임금인상률을 쟁취하였다. 1987년 민주화이후 노동조합이 광범위하게 결성되면서 저임금, 장시간노동체제가 무너졌고, ‘노동자도 인간이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였다. 임금인상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 향상뿐 아니라 소비 증가와 경기 활성화라는 경제의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소득격차도 완화되고 사회적 불평등도 약화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는 계속 지속될 수 없었다. 세계화라는 개방경제체제 앞에서 무능했던 정치권력과 재벌들은 경제주권을 국제통화기금(IMF)에 송두리째 빼앗겼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칼날 위에 내팽겨졌다.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지키는 고용안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중 하나를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저성장·고실업 환경에서 노동조합은 시나브로 기업의 울타리에 갇혀 버렸다. 사업장을 뛰어 넘는 노동자간 연대는 구호로 외쳐졌지만 현실은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가 앞섰다. 회사의 성장이 고용의 안전판이므로 동료들의 아웃소싱에 눈 감고, 청년들의 비정규직 채용에 합의하였다. 경제위기이후 임금의 낙수효과도 지속되지 않았다. 재벌대기업이 잘 나가면 납품업체가 혜택을 보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도 동반상승하는 효과가 살아졌다. 자산 격차의 확대로 인한 사회 불평등 만큼이나 노동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었다. 촛불시위의 밑바탕에는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와 함께 경제적 분노가 그 밑에 또아리 트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억눌린 임금인상 욕구가 다시 촛불광장에서 경제민주화의 요구로 확산된 것이다. 청년노동자들은 헬 조선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였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해소, 노동시간 단축은 지난 10년간 역행했던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를 찾고자하는 최소 요구로 분출한 것이다. 생산성에도 못 미치는 임금은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12%가량 늘어나는 동안 노동자들이 받은 실질임금 상승률은 3분의 1 수준인 4%대에 그쳤다. 늘어난 생산량보다 임금을 적게 올려 남은 이익은 기업의 몫이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감소하면 기업이 저축으로 쌓아둘 수 있는 돈이 늘게 된다. 실제 한국 기업들의 저축률은 크게 높아졌다. 한국의 기업저축률은 2013년 21.5%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소득 격차와 함께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임금의 공정성 논란이다. 임금 공정성에 대한 관심은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임금격차 중 주목할 점은 동일가치 노동(equal value work)을 하는 노동자들 간의 임금이 성별, 기업 규모별, 고용 형태별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OECD가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조사하기 시작한 2000년부터 한국은 14년 연속 부동의 1위이다. 정규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OECD국가들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15.3%(남자의 임금이 여자의 임금보다 15.3% 많다)인데, 한국은 OECD 평균의 2배를 넘는 36.6%이다.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2017년 6월 발표한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분포 분석’을 보면 300명 이상 대기업 일자리의 월평균 소득은 432만원, 50명 미만 중소기업 일자리의 소득은 238만원이었다. 50명 미만 기업 일자리의 임금이 대기업의 55%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도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 통계청의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 임금 격차가 13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8월 기준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84만3천 원으로 비정규직 156만5천 원보다 127만8천 원 많다. 한국 노동자들간의 과도한 임금격차는 사회 정의에 반하며 노동운동의 대의에도 어긋난다. 임금 공정성의 국제적 기준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다. 일의 내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치 측면에서 동일하다면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임금에 관한 평등권 혹은 균등 처우에 관한 원리로 이해된다. 이에 따르면 담당 업무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 피부색, 출생지역, 그리고 학력 및 고용형태 등의 속인적 요소에 따라서 차별적인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불거지고 있는 사회 갈등의 뿌리에는 공정성을 추구하는 사회 정의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이제 임금 문제는 임금 수준 향상에서 한 벌 더 나아가 임금 공정성을 위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연대임금정책은 전체 노동자 전체가 살기위한 최소한의 합의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함께사는 사회'의 현실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 인종, 성별, 외모, 종교, 재산 등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도덕이나 윤리일수도, 정교하게 다듬으면 법률일수도, 진지하게 얘기하면 신념에 해당할 이 얘기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어찌보면 당연하다. 지난달 발달장애인을 취재하고자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발달장애인 취재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고, 취재시간도 비교적 넉넉히 확보했다. 취재일정도 간단했다. 장애 증상인 ‘도전적 행동’을 가진 발달장애인 3명과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동산을 사회복지사, 전문치료사와 함께 다녀오면 되는 일정이다.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행동이 문제였지만, 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복지관 문을 나서 보라매공원으로 접어든 사이 대열이 잠시 흐트러지면서 한 발달장애인이 불쑥 내게 와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사회복지사가 옆으로 와 “반가워서 하는 행동이에요”라고 안심시켰고, 실제로 내게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였다. 나도 곧바로 “아, 괜찮아요”라며 미소로 답했지만 솔직히 약간 겁먹었다. 앞서 한 시간 가까이 1~2m 내외의 거리에서 지켜보고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에도 괜히 가까이 왔다는 이유로도 긴장한 것이 사실이다.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시작한 발달장애인과의 보라매공원 산책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선 특이하게 여길만한 행동 투성이었다. 대열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한 발달장애인은 바닥에 낙엽이란 낙엽은 다 손으로 줍고, 다른 발달장애인은 낯선 사람들을 마주쳐서인지 침을 계속 뱉었다. 비장애인이면 금방 갈 거리를 가는데 한참 걸리기도, 아니 아예 특정 구역은 가기를 거부한 바람에 실랑이를 하다 결국 돌아가야만 했다. 가만보니 발달장애인의 산책을 나만 특이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공원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낯설어하며 한발자국 물러서거나 뒷걸음질치기도 했으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의 잘못된 편견과 어리석음은 동산 중턱에서 어김없이 깨졌다. 오르막 코스로 접어들면서 유난히 이동속도를 내지 못하던 때,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고생 많으세요”라고 말이다. 그 아주머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도 청각장애인의 부모라며, 본인도 다 겪어봤다고 우리를 이해한다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순간 그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서로를 미워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은 어디가고 나 자신도 내가 비판하던 사람들처럼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고 잘못된 행동이라고만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어느새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려 사는데 익숙할지도 모른다. 이번 발달장애인 취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학교 등에서 단순히 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어울리는 연습이 있어야 나 같은 실수를 반복 안하지 않을까.박용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