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외로운 유년기·형제의 난…이면에 굴곡진 개인사
치열한 후계 경쟁 속 중압감…막내 딸 잃은 슬픔도
입력 : 2020-10-25 16:49:14 수정 : 2020-10-25 16:49:14
[뉴스토마토 박한나 기자] 이건희 회장은 사실상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각종 신화를 쓰는 등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이면에는 외로운 유년기와 형제의 난처럼 굴곡진 개인사가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고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이건희는 위로 형과 누나가 6명이나 있었던 탓에 아버지 고향인 경남 의령 친가의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외로운 유년기와 형제의 난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사진은 2012년 CES 2012 참관 모습. 사진/삼성전자
 
어린 이건희의 유소년기는 외로웠다고 주변인들은 전한다. 전쟁과 부친 사업 등으로 초등학교를 여섯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또래 친구가 없었다. 또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식민지 출신의 어린 소년이 일본에선 더욱 또래들과 친분을 쌓기 쉽지 않았다. 
 
당시 둘째 형이 와세다대학을 다니고 있어 둘째 형과 같이 지냈지만,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났던 만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 기르기가 취미가 돼 1979년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순종 짓돗개 한 쌍을 직접 출전시킨 경험까지 있다. 
 
외로운 유년기를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회장의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장자 상속이라는 원칙을 깨고 경영권을 물려받기까지 형제들과 치열한 후계경쟁을 벌여야 했다. 애초 호암은 이 회장에게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지만, 호암과 대립한 형들로 형제의 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장남 고 이맹희씨는 1996년 삼성그룹 후계자로 그룹을 이끌었지만 호암의 기대에 못 미쳐 경영권을 호암에게 다시 돌려주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시간이 흘러 2012년에도 이맹희 씨는 호암이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차명재산을 두고 소송을 제기해 이 회장과 유산 소송을 벌였다. 이 회장이 승소했지만 복잡한 가정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차남 고 이창희씨는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의 현장 지휘 혐의로 6개월 복역했다. 이창희 씨는 경영복귀를 시도했지만 좌절되자 호암을 비롯한 삼성 비리를 청와대에 밀고해 눈 밖에 나 있었다. 결국 후계자 구도에서 쫒겨났고, 그동안 경영성과를 내온 이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형들을 제치고 올라 중압감이 심했을 것이란 게 주변인들의 평가다. 
 
이 회장은 슬하 1남 3녀를 뒀는데, 막내딸을 앞세우는 비운도 겪었다. 미국 유학 도중에 사망한 막내딸 윤형씨는 이 회장의 가슴에 한으로 남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건희 회장은 막내 윤형씨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발표했다. 빈소는 고인이 입원해있던 삼성서울병원에서 차려졌으며, 임직원들은 온라인 추모관을 통해 이 회장을 기리고 있다.
  
박한나 기자 liberty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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