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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생활법률)상급자에게 더 필요한 '성인지감수성'
2021-01-08 06:00:00 2021-01-08 12:59:51
최근 대법원은 부하 여직원의 손등을 양 엄지로 10초간 문질러 기소된 해군 소령에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1,2심의 무죄판결을 뒤집고 유죄취지로 판기환송한바 있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11186). 
 
대법원은 그간 직장상사가 ‘신입사원에게 음란물을 보여주고 머리카락을 만진 행위’, ‘회식에서 직원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행위’, ‘모텔에 가자며 손목을 강제로 잡아끈 행위’ 등도 모두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추행’에 대해 ‘일반인을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에 의할 때 예상되었던 결과이다. 그간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직장 내 성추행 범죄행위의 현실을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조명하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결로 판단한다.
 
최근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 단어는 통상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으로 정의된다.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사건 등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018년 대법원 선고에서 처음 인용한 이후 약 30여건의 판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은 주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과 관련이 있다. 여러 판례에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형사법상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폐기하고 ‘우월한 증거(preponderance of evidence)’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있다. 피고인이 반박으로 내놓은 타당성 있는 정황증거도 배척당하게 되어 재판이 진술 위주로 이루어지고, 특히 고소인(피해여성)의 진술위주가 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 또한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까지 포함한 여러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상급자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방교육이 충분히 시행되고 있으나 그 실효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 내부에 왜곡된 성문화가 존재하는 한 예방교육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2021년은 이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진우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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