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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17년간 한·일 한·중 해상운임 짬짜미…고려·흥아·장금 등 800억 처벌
한·일 항로 76차례…한·중 항로 68차례 운임 담합
"한·중 운임협정 등 고려 한·중 항로 과징금 부과 안해"
담합 선사, 미협조 화주에 선적 거부 등 보복·은폐
2022-06-09 12:00:00 2022-06-09 18:14:11
 
[뉴스토마토 김현주 기자] 한·동남아 항로 운임 담합 건에 이어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라인 등 17년간 담합한 한·일, 한·중 항로의 선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각종 부대운임 도입·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제반 운임에 합의해왔다. 또 다른 선사들의 화물을 서로 침탈하지 않기로 하고 자신의 거래처를 유지하는 ‘기거래 선사 보호’ 등 운임경쟁을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담합에 참여하지 않는 화주에 대해서는 컨테이너 입고금지, 예약취소 등 공동의 선적 거부를 통해 합의 운임을 수용하도록 강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일 항로의 운임을 담합한 15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800억원을 부과한다고 9일 밝혔다. 한·중 항로에서의 운임을 담합한 27개 선사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결정했다.
 
자료는 한-일 항로 사업자별 과징금 부과 내역 표. (제작=뉴스토마토)
 
운임 합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합의된 운임 준수를 독려한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근협)에 대해서는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으로 2억4400만원을 부과했다. 황해정기선사협의회(황정협)에 대해서는 시정명령만 결정했다. 
 
조사 내용을 보면 한·일 항로의 담합 선사는 흥아라인, 고려해운, 장금상선, 남성해운, 동진상선, 천경해운 등 총 15개 선사다. 이 중 14개는 국적선사이며 1개는 외국적선사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86.5~93.7%에 달한다. 해당 선사들은 지난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중 항로에서는 27개 선사가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에 걸쳐 컨테이너 해상 화물운송 서비스 운임을 합의했다. 27개 선사 중 16개는 국적선사이며 11개는 외국적선사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70.1%~83.5%에 달한다.
 
◇ 한·일 항로 운임 담합2008년에만 620억 이득
 
고려해운, 남성해운, 흥아라인 등 주요 선사 사장들은 지난 2003년 10월 한·일, 한·중, 한·동남아 등 3개 항로의 기본운임 인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최저운임(AMR)을 합의·실행했다. 기본운임은 선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유류비와 인건비 등을 보전하기 위해 부과하는 운임이다.
 
선사들은 긴급유류할증료(EBS)와 터미널조작수수료(THC)뿐 아니라 컨테이너 청소비(CCF)와 서류발급비(DOC) 등 다양한 부대비용의 신규 도입과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부대운임은 일시적 운항비용 증가 등을 보전할 목적으로 부과하는 운임을 말한다.
 
또 선사들은 대형화주들의 입찰이 이뤄지는 시기를 전후로 회합 등을 통해 투찰 가격을 합의했다. 투찰가격은 선사들이 합의한 최저운임의 연장선상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선사들은 담합을 숨기려고 합의 운임에서 10달러를 높여 투찰하고 낙찰된 선사 이외에는 화물 선적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담합을 통해 선사들은 운임 수입이 증대되고 흑자 경영을 달성하는 등 이익을 얻었다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한·일 항로의 경우 선사들이 합의를 실행하면서 2008년 한 해에만 620억원의 수익을 달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벌과금 부과 등 '패널티' 적용·미협조 화주 '보복'
 
선사들은 합의 실행을 강제하기 위해 운임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벌과금도 부과했다. 선사들은 서로 다른 선사들의 합의 위반사항을 감시하고 선사 간 협의체인 한근협과 황정협에 합의 위반 선사를 제보하는 등 날을 세웠다.
 
맹외선(특정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그 동맹이 지배하는 정기 항로에 진출하는 선박) 이용 화주에 대해는 선복 미제공으로 공동대응하고 어기는 선사에게 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당 500달러의 페널티를 부과키로 결정했다.
 
합의 운임을 위반한 선사는 6개월간 선복 제공을 중단하는 페널티도 수립했다. 또 합의 위반 횟수에 따라 경고, 공식사과, 공동운항 제외 및 회원자격 검토 등 단계별로 가중되는 페널티도 합의했다.
 
선사들은 운임 합의 실행여부를 감시할 목적으로 중립감시기구, 중립관리제, 실태조사, 거래현황 점검 등의 이름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특히 중립위원회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총 7차례 운임감사를 실시하는 등 한·일 항로에서 합의 위반한 선사들에게 총 2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한·중 항로에서 합의 위반한 선사들에게는 총 8000만원의 벌과금을 부과했다.
 
선사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화주를 대상으로 보복하는 등의 수법도 썼다. 합의 운임을 지키지 않는 화주나 맹외선을 이용하는 화주에게는 공동으로 선적을 거부하고 자기네 선복을 이용 강제하는 등 경쟁을 제한했다.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해 삼성, LG,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화주들도 선사들 담합 앞에 손을 쓰지 못했다. 선사들은 대기업 화주에 대해서도 이들이 운임을 수용하겠다는 서면을 제출할 때까지 선적을 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이 뿐만 아니다. 선사들은 담합의 위법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담합을 은폐했다. 대외적으로는 개별 선사 자체 판단으로 운임을 결정했다고 알리며 담합으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운임 인상 금액은 1000원, 시행일은 2~3일 정도 차이를 뒀다. 공정거래법에 문제가 될 수 있는 회의록이나 최저운임, 투찰가 결정 내역 등을 대외비로 관리하고 이메일 등 담합 증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은 삭제토록 했다.
 
◇ "해운법상 신고·협의 요건 미준수"
 
쟁점은 해당 합의가 공정거래법과 해운법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행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공정거래법 제116조는 다른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해운법 제29조에서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일정한 절차와 요건 아래서 허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화주에 대한 보복, 합의를 위반한 선사에 대한 페널티 부과 등 내용적 한계도 있다고 봤다.
 
조승헌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한·일 항로 76차례, 그리고 한·중 68차례 운임 합의는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위법한 공동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며 "전체 합의 중에서 한·일 항로 76차례 중 69차례, 그리고 한·중 항로 68차례 중 61차례의 운임 합의는 아예 화주단체 협의와 해수부에 신고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신고 외관을 갖춘 한·일, 한·중 항로 각각 7차례 합의일 경우에도 최저 운임을 합의하고도 운임 회복으로 협의하고 신고하는 등 화주단체와 해운당국이 구체적으로 합의내용을 전혀 알 수 없게 허위로 협의하고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한·중 항로 담합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중의 경우 1993년도에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 운임협정을 맺고 양 정부간 공급량을 제한해 왔다"며 "기본적으로 공급량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운임담합을 했기 때문에 그 담합으로 발생하는 효과 등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중 항로에 대해) 시정조치를 했기 때문에 똑같은 행위를 한다면 시정조치 불이행으로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해운업계의 행정소송 등 강한 반발과 관련해서는 "(이번 결정에서는) 업계 입장 등은 충분희 고려를 했다"며 "선사들의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서 처리해야 하는 전형적인 가격담합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공정위는 1월 한·동남아 항로의 운임 담합에 대해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일 항로에서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원을 부과하고, 한·중 항로에서 운임을 합의한 27개 선사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부과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선박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김현주 기자 kkhj@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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