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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조국 1심 실형, 586의 재민주화가 필요하다
2023-02-10 06:00:00 2023-02-10 06:00:00
지난 3일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녀 입시비리 범행은 대학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동기와 죄질이 불량하고 입시제도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해 죄책도 무겁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항소할 뜻을 밝혔다.
 
조 전 장관이 실형을 선고받자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아깝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조 전 장관을 옹호해온 민주당은 침묵했다. 민주당은 왜 침묵했을까? 아마도 지지 입장을 내든 반대 입장을 내든 당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을 편들어서 ‘민주당 2중대’로 홍역을 치뤘던 정의당은 김창인 청년정의당 대표명의로 입장을 냈다. 
 
김 대표는 “조국사태는, 소위 민주개혁 세력 또한 귀족계급이며 우리 사회 부정부패에 동조했다는 것이 폭로된 사건”이라며 “민주개혁 투사 자처하면서, 학벌 폐지-평등한 교육 운운하시면서 자기 자식은 어떻게든 명문대 보내려고 애도 참 많이 쓰셨다. 민주당 386들의 위선과 기만이 이렇게 또다시 확인되는 순간”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이른바 ‘조국사태’가 한국정치에 남긴 부조리를 어느 정도 드러내 심판했다는 점에서 성찰의 계기를 준다.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녀에게 온갖 스펙을 만들어주고 온라인 시험문제까지 대신 풀어주는 불공정과 불법을 자행한 조국 전 장관은 서민 부모들과 2030세대들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를 남겼다. 그런 만큼 이제라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중단하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조국사태’는 조국 개인의 허물과 위선 뿐만 아니라 조국을 옹호했던 586 그룹의 ‘선악의 이분법적 사유구조’가 이중 잣대와 확증편향성에 따른 ‘내로남불’이라는 반민주적 규범으로 드러나게 돼서 민주화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조국과 586그룹의 재민주화가 필요하다. 위정척사론과 소중화론과 같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무장해서 불공정에 분노하는 국민정서와 법 감정을 거부한 586의 비민주적 행태는 공감과 상식을 통해 민의를 반영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규범과 충돌한다. 
 
586이 2030세대들이 주장하는 공정의 시대정신에 맞게 재민주화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서생적 문제의식을 갖되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춰 실사구시(實事求是) 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구를 저버리고, 상인들의 현실감각과 정서를 무시한 채 시민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본 ‘사대부식 유교민주주의’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들은 잃어버린 상인들의 현실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적인 시민모델’을 찾아서 그 습속을 배우는 것이 시급하다. 상인들의 현실감각이 ‘공감’과 ‘상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아담 스미스가 강조하고 있는 ‘공감’(sympathy)에 기초한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습속은 2030세대들의 시대정신과 통한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공감과 공정한 관찰자의 원리’가 부정의한 국가주의와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건전한 시장경제와 자생적인 민주질서를 만들게 한다고 보았다. 
 
‘조국사태’가 이성적 도덕정치로 무장한 조국과 586 운동권의 대처가 국민정서와 법감정 및 국민상식과 충돌하여 벌어졌다는 점에서 ‘칸트형 시민’보다는 ‘아담 스미스형 시민’이 더 적절해 보인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통해 사적 욕망을 지닌 인간이 타인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공정하고 상식적 인간에 도달하는 보통 시민의 상을 제시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사적인 이기심을 넘어서는 자기극복의 초월성을 신과 같은 절대자가 아닌 타인과의 교류과정인 사회경험 그리고 동료들과의 공감의식에서 찾았다. 그는 사회경험과 공감이라는 거울에 비춰서 나온 인정과 불인정, 쾌와 불쾌라는 판단이 사회를 움직이는 운영원리가 된다는 ‘도덕감정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이기심의 범위를 공감의 원리로 제한하여 타인의 행복을 저해하지 않는 선으로 보았다.
 
하지만 칸트는 이런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칸트는 동양의 주자학이 리(理)와 도덕법칙으로 무장한 초월적 존재자인 성인군자를 설정한 것처럼, ‘선험적 실천이성’ 그리고 ‘선험적 도덕법칙’을 설정하였다. 이런 설정에 따라 칸트형 시민은 도덕과 정의와 법은 이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에 반해 아담 스미스형 시민은 도덕과 정의와 법은 이성이 아닌 공감이라는 감정적 경험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 둘 중 어느 형이 더 적절할까? 586들에겐 상인들의 현실감각이 부족한 만큼, 후자가 더 낫다. 칸트형 시민에서 아담 스미스형 시민으로 한 단계 내려가야만 ‘사대부식 유교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민주공화국 정신에 부합하는 ‘공화시민’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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