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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노르웨이서 온 보랏빛 음악, 시그리드
Z세대 노르딕 팝 선두주자 "한국 공연, 내 커리어 새 챕터 열어"
"음악은 내 자신의 보호 장치이자 내 안의 날 것 마주보는 매개"
2023-05-31 15:09:57 2023-05-31 15:09:5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노르딕(북유럽) 국가들.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 엘크의 울음소리, 여름이면 백야가, 밤에는 오로라가 펼쳐지는 자연 정경은 수많은 예술적 영감으로 태어나곤 합니다.
 
노르딕 음악가들은 대체로 이런 자연 현상들과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습니다. 긴 눈과 얼음의 시간을 음악에 녹여내는 시규어로스, 울 니트와 벽난로처럼 따뜻한 가족애를 그리는 루카스 그레이엄(덴마크), 영화 '겨울왕국'으로 세계를 휩쓸던 그 유령 같은 목소리와 몽환적 선율의 오로라(노르웨이)…. 인구 7만 명의 노르웨이 소도시 올레순에서 나고 자란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26)도 마찬가지.
 
"작은 도시에서 자란 것은 제 음악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지요. 19~20년 전 처음 배운 피아노는 여전히 제 도피처이자 안식처에요. 너무 어린 나이에 냉혈한 음악 산업에 노출됐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주로 집 바로 뒤 숲을 가거나, 가족들과 스키를 타며 보냈는데요. 이런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서 자란 경험은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노르웨이 팝 뮤지션 시그리드는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서재페)'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공연 이튿날인 29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시그리드는 청바지를 또 입고 있었다. 사진=유니버설뮤직
 
시그리드는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서재페)'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공연 이튿날인 29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시그리드는 "(노르딕의 수많은 음악가들처럼) 제 음악 역시 표면적 밝음(멜로디) 밑에는 슬픔(가사) 또한 간직하고 있다"며 "음악은 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이자 내 안의 날 것, 솔직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매개"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그리드는 현재 오로라, 페더 엘리아스와 함께 노르딕 팝 센세이션을 주도하는 음악가입니다. 유럽권에서 주목할 만한 신예를 선정하는 'BBC Sound Of 2018'의 우승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미국 Z세대의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 한국계 미국 DJ 겸 프로듀서 예지 등의 후보를 제쳤습니다. 이후 정규 1집 '서커 펀치(Sucker Punch)'와 2집 '하우 투 렛 고(How to Let Go)'로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에서 각각 4위와 2위에 올랐습니다. 'Don't Feel Like Crying', 'Don't Kill My Vibe' 등이 대표곡입니다. 
 
상쾌한 공기 같은 선율의 하이애즈카이트 등 북유럽 음악부터 영국 팝스타 아델과 엘리굴딩,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악틱 몽키스, 호주 밴드 테임 임팔라를 즐겨 들으며 창법과 사운드를 연구해왔다고 합니다. '서재페' 무대에서도 밝고 통통 튀는 사운드와 폭발적인 가창으로 무대를 휘저었습니다. 이날 청초한 얼굴에 청바지 차림으로 만난 시그리드는 프리지아처럼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청바지를 즐겨입는 이유('서재페' 무대에서도 청바지 착용)는 저와 가장 잘 맞기 때문입니다. 무대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관객들에게도 파워풀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죠. 세계 각국 투어가 늘어나는 시기기 때문에 실용적이 면에서도 중요해요. 투어 땐 인생이 짐 가방 하나에 담겨 이동한다고 생각하거든요. 25~30벌 정도의 청바지를 돌려가며 입고 있어요."
 
시그리드는 북유럽 여성의 인명이나, '승리의 아름다움'이란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한 단어. 이름의 뜻과 음악 세계 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냐고 묻자 "어제 공연(서재페 첫 내한 공연) 이후 개인적인 승리를 느꼈다"며 "커리어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기분이었다. 무대 위에서 재밌고 노는 순수한 감정 자체는 축복"이라고 돌아봤습니다.
 
자연 풍광과 오픈카를 배경으로 한 시그리드의 앨범 재킷. 사진=유니버설뮤직
 
노르웨이에서 온 자신의 음악에 한국 팬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신기하다"는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팬이라고도 했습니다. "'우영우' 드라마에서 봤던 한국의 모든 걸 온전히 느끼고 가고 싶어요. 그러면 '시즌2'를 기다리는 게 좀 덜 힘들 것 같아요."
 
멜로디 위주의 후크(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간)를 먼저 만들고, 통상 실제 경험으로 영감으로 가사를 쓰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기타를 배우고 동네 연극 팀까지 다니며 무대 공포증을 극복했다고. '서재페' 무대에서는 몽글거리는 일렉트로팝, 신스팝 장르들이 부유하는 가운데, 알록달록한 색감의 무대 연출도 특기할 만 했습니다. 다양한 색감들 중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컬러는 무엇이라 생각할까.
 
"투어 크루 중 한 명이 제게 시그리드는 보라색이야라고 하더군요. 어린시절 보컬 코치도 제게 빨간색과 파란색을 동시에 가진 보컬이라고 해주셨어요. 빨강은 따뜻하고 아늑하지만 파워풀하고 힘차죠. 무대에 선 이상 직설적으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전달하는 두려워하지않는, 제 모습과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밝음, 재미, 야망. 슬프다고까지 할 순 없지만 섬세함과 침착함, 정적인 모습은 파랑색으로 연결될 수 있어요. 빨강과 파랑의 조화인 보라, 근데 때로는 오렌지가 나올 때도 있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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