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게임+)이브와 아담이 다시 쓰는 창세기, 스텔라 블레이드
성경 속 창세기 뒤집은 서사
영화 한 장면 완성하는 액션
진정한 인간은 무엇인가 질문
2024-04-24 23:00:00 2024-04-25 08:02:17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지구로 향하던 함선 수십 척이 지상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코드 레드! B32 프로토콜에 의거, 드랍 포드 전기 현재 위치에서 사출됩니다."
 
제7 강하부대 이브가 탄 드랍 포드가 지상으로 강하하고 있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실행 화면)
 
괴생명체 '네이티브'에게 뺏긴 지구를 되찾기 위해, 제7 강하부대원이 탄 드랍 포드 수백 기가 대기권에 돌진합니다. 이후 살아남은 대원은 이브와 타키뿐. 하지만 타키마저 이브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습니다.
 
절망한 이브는 홀연히 나타난 원주민 아담에게 구출됩니다. 재정비를 마친 이브는 아담, 제5 강하부대 기술자 릴리와 함께 임무 수행에 나섭니다. 수십 년 전 지구에서 인간을 몰아낸 알파 네이티브들을 섬멸하고, 최상위 괴물인 엘더 네이티브를 포획 또는 제거하는 겁니다.
 
시프트업의 첫 콘솔 액션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가 26일 플레이스테이션(PS)5에 독점 출시됩니다. 김형태 감독은 액션의 재미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인간성에 대한 사유를 블루레이 디스크 한 장에 눌러담았습니다.
 
이브가 동료 타키에 의해 드랍 포드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뽑히는 듯한 연출이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실행 화면)
 
창세기 뒤집은 이브의 탄생
 
이 게임을 관통하는 주제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시프트업은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성경의 창세기를 재해석했습니다.
 
지구를 되찾기 위해 강하한 이브는 드랍 포드 파손으로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해 당황합니다. 이에 동료 타키가 문을 뜯어내고 이브를 꺼내주는데요. 이는 마치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뽑혀나오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성경에선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 하나를 뽑아내 살을 채워 이브를 만드셨죠.
 
그런데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성적 세계로 상징되는 드랍 포드에서 여성인 타키의 손에 의해 이브가 구출돼 나온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특히 작품 전체를 감상하고 나면, '지상에서 태어난 이브' 장면이 전체 서사를 상징하는 큰 조각임을 알게 되는데요. 이브가 자기 임무의 진실을 알아내고 동료들과 하게 될 선택과 연출이 이 장면의 상징성과 대구를 이루기도 합니다.
  
앞서 드랍포드 수백기가 지구로 향한 결과, 이브 한 명이 살아남은 연출 역시 인간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의미심장한 뒤틀기로 읽히기 충분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제5 강하부대 생존자 릴리, 제7 강하부대원 이브, 지상의 생존자 아담. (사진=SIEK)
 
기계 몸 안에서 고민하는 인간
 
이브는 아담, 릴리와 함께 생존자 정착촌인 '자이온(XION)'으로 향합니다. 사람들은 강하부대원을 '천사'라는 은어로 부르는데요. 자이온을 지키는 파수대와 주민 대부분이 처음엔 이브를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하지만 이브가 자이온을 이끄는 선지자 오르칼의 협조로 알파 네이티브를 무찌르고, 주민들의 고민도 해결해주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주민들의 몸이 전혀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 겁니다. 대부분의 얼굴에 인간의 흔적이 없고, '바디셀'이라는 동력원에 의존해 살아가니까요. 이브 역시 '요리'라는 개념을 낯설어하고, 기계 장치로 신체 성능을 끌어올립니다. 사람들은 구 인류를 '유기 인류'라고 부르는데요. 자신들의 창조주 '마더 스피어'가 준 몸과 달리, 유기체로 만들어져 불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자이온 사람들의 몸은 대부분 기계로 돼 있다. 그럼에도 서로를 사람이라고 부른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실행 화면)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리들, 유기 인류와는 다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장사를 치르는 대신 메모리카드를 회수해 그를 기립니다. 추모하거나 무운을 빌 때는 "당신의 기억이 이어지기를"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서처럼 기억을 삶의 연장으로 보는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게임 곳곳에선 주민들의 인간성이 미장센으로 부각됩니다. 선지자 오르칼과 창조주 마더 스피어에 대한 음모론을 포스터와 서적, 죽은 이들의 메모리 카드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부가 임무에선 남녀 간의 사랑과 질투, 자매와 부녀 관계, 파수대의 전우애 등을 확인하게 되죠. 이를 통해 기쁨과 고통이 저장된 '기억'의 양면성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브가 한때 생존자들이 숨어지낸 공간에서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메모리스틱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실행 화면)
 
듀얼센스로 완성되는 액션
 
이렇게 낯설고도 익숙한 '인류'의 모습을 접하면서, 게이머는 이브와 함께 알파 네이티브를 하나 둘 쓰러뜨립니다. 그리고 이브가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진정한 인간'에 대한 물음도 선명해집니다.
 
게이머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선 선지자 오르칼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아담이 원격 조정하는 드론과 릴리의 기술 지원도 필수죠.
 
이브의 근접 전투는 공방이 엄격한 소울 라이크 형식입니다. 적의 공격 시점에 이브의 검 '블러드 엣지'를 맞대는 '패링'에 성공해야 반격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패링에 성공할 경우, 듀얼센스 자체 스피커에서 '깡!'하는 효과음이 나는데요. 이때 균형을 잃은 적에게, 누적된 베타 에너지로 사정없이 필살기를 쏟아내는 쾌감이 있습니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전투 장면. 화면 전체를 조망하는 익스트림 롱 숏부터 몸 가까이 보여주는 미디엄 클로즈업까지 다양한 시점으로 연출된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실행 화면)
 
릴리가 아담 몰래 드론을 개조해, 총으로 쓸 수 있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는 근접전과 원거리 전투를 정신없이 섞어 쓰는 보스전의 재미를 높여줍니다.
 
주요 전투의 연출은 게이머가 영화의 한 장면을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우선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로 알파 네이티브의 힘을 강조한 뒤 전투를 시작합니다. 전투 후반부턴 이브의 허리부터 머리까지 보여주는 미디엄 숏, 가슴부터 머리까지 보여주는 미디엄 클로즈업 등으로 이브가 괴물의 몸을 힘겹게 찢어내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땀 맺힌 손부터 가슴까지 울리는 듀얼센스의 진동은 두 말 할 것도 없죠.
 
스텔라 블레이드 전투 장면. (사진=SIEK)
 
"당신의 기억이 이어지기를"
 
일정 조건을 갖추고 후반부에 들어서면, 사람이 고통 위에 서 있다 해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공간이 펼쳐지는데요. 이는 너티 독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에서 주인공 조엘과 엘리가 기린 무리를 보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치유의 공간에서 잠시 작품의 주제를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겁니다. 대사막의 오아시스에서 하는 낚시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한숨을 돌린 뒤 결말까지 내달린 이브는 인간의 속죄와 구원을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결말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클로징 크레딧이 끝나고 나타나는 문장도 제각각입니다. 물론 제작진이 의도한 결말은 이 중 하나입니다.
 
이브와 아담. (사진=SIEK)
 
그럼에도 이 게임은 최근 진행 상황만을 저장합니다.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려면 게임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달리 말해, 이브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죠. 이는 숙고의 결과를 되돌릴 수 없고, 후회 속에 내일을 기약하는 인생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스텔라 블레이드는 미녀 주인공과 잔혹한 액션의 대비, 대사와 연출의 대구, 시대를 반영한 주제로 높은 흡인력을 갖췄습니다. 이브의 인사말 "당신의 기억이 이어지기를"처럼, 이 작품은 세계 시장이 한국 콘솔 게임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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