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상법 개정시 소송 남발 우려에 "면책 가능"
'경영판단 원칙' 제도화 제안…"그러면 법 개정 하나마나"
2024-06-12 16:50:11 2024-06-12 18:35:04
 
[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보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사회를 상대로 한 일반 주주들의 소송 남발 우려에 대해선 '경영판단 원칙'을 제도화할 경우 민형사상 면책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경영판단 원칙이 시행될 경우 상법이 개정돼도 의미가 크게 퇴색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12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를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쪼개기 상장처럼 전체 주주가 아닌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법 및 모범회사법에서 명시적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미국 델라웨어주처럼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배임죄 등으로 주주들의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는 기업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경영 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 원칙'의 제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가 선의에 의한 정보에 기초한 판단으로,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신뢰에 의해 내린 경영상 결정에 대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해도 사법적인 심사를 억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재계에선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 인정될 경우 형법에 의한 배임죄 처벌, 주주총회에서의 해임 의결, 개인적 손해배상책임 등 법적 리스크가 뒤따르기 때문에 이사회가 마비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 참석했다.(사진=뉴스토마토)
 
 
학계 "지배주주 일가 사익편취 막아야"
 
학계에서도 지배주주 일가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과 부의 이전 등 회사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과징금 부과 기준이 되는 지분율을 하회하도록 계열사 간 합병 또는 지분 매각을 통해 규제를 우회하는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김 교수는 "지배주주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대주주에만 유리한 합병비율 책정 등과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관련된 근거 조항을 회사법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주 이익만 챙기려다 회사 실적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 내용은 이번 상법 개정의 규율 대상이 아니다"라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부의 이전 우려가 없는 일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인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나현승 고려대학교 교수는 "특수관계인 간 내부거래에 대해 주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부거래 공시 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등 주주의 기업 관여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경영권과 관련해선 기업 인수 시 전체 주식에 대한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원활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주주총회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제언했습니다. 황현영 연구위원은 "카카오톡이나 증권사 앱 공지로 주총 알림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기관 투자자의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선 주총 분산 개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지리적 제약이 있는 해외 기관투자자와 관련해선 "상임대리인 제도를 개선하고 주총 소집통지 시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가 함께 제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12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 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 진성푼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김중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정은정 금융감독원 법무실 국장.(사진=뉴스토마토)
 
 
경영혼란 우려…"중소기업 현실 고려해달라"
 
하지만 상장회사들은 이사 충실의무 조항이 개정될 경우 빚어질 경영 혼란을 우려했습니다. 일반 주주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이사회를 대상으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그 의미가 모호해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사의 행위기준으로 작동하기 어려우므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법원에 갔을 때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어떻게 판정할지 문제가 생기고 소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사상 손해배상만 연결되는 게 아니고 형사상 배임죄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은 "코스닥은 개인 투자자가 90%를 차지하는 특이한 시장"이라며 "이런 시장에 규제를 추가 도입하는 것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제도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기업과 주주의 인식이 합치되는 것이 중요하다"라면서도 "지배구조 개선 방안 마련시 중소기업의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정은정 금감원 법무실 국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과 더불어 이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경영 판단 원칙의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세미나는 여전히 정부와 학계, 재계의 의견 차이가 크다는 현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는데요. 다만 이날 이 원장이 제시한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서는 주목도가 높아진 분위기였습니다. 상법 개정의 대안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영판단의 원칙이 들어가면 상법을 개정하는 의미를 크게 퇴색시킬 거라는 반박도 제기됐습니다. 최근 국회 개원과 함께 상법 개정안을 연달아 발의하고 있는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선 경영판단 원칙이 실행될 경우 상법 개정이 퇴색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경영판단 원칙이 들어가면)법을 개정 하나 마나 하게 된다"면서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라면서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상법 개정 핵심은 주주간에 이해충돌이 생겼을 때 일반 주주의 부가 지배주주로 이전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게 목적"이라며 "주주간 부의 이전이 일어나는 것을 경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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