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최대 20억’ 사전공시제 비웃는 기업사냥꾼
대주주 수천억원대 차익 실현 속출
2024-07-11 15:51:43 2024-07-12 08:14:11
 
[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 과징금 최대 20억원을 부과하는 사전공시제도를 두고 시행 전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징금 규모가 너무 적다는 지적인데요. 테마성 재료를 타고 주가가 급등하는 사이 대주주 등이 대규모 차익 실현에 나선 전례가 많은 만큼 제도 보완을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24일부터 상장사의 대주주 지분 매도 관련 사전공시제도가 시행됩니다. 이 규정은 대주주가 발행주식총수 대비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 규모의 주식을 거래할 때, 매매 예정일 30일 전 매매 계획을 공시하도록 합니다. 단일 거래액이 아닌 과거 6개월 동안 거래수량과 금액을 모두 더한 금액입니다. 장내 거래뿐만 아니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도 해당합니다.
 
상장사 대주주의 거래계획 미공시·허위공시·매매계획 미이행 등 제도를 위반할 경우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불가피한 사유 발생 시 거래계획 보고자가 거래계획을 철회할 수 있는 사유에 대해서도 규정했습니다. 반면 대주주가 아닌 연기금, 펀드 등 재무적투자자와 외국인들은 사전공시 의무자에서 제외됐습니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업계에선 조롱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과징금 최대 20억원이 사전공시의무를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동인을 제공하는 징벌적 성격이 약하다는 설명입니다.
 
예컨대 주가 급등으로 인해 대규모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상장사의 대주주 등이 주가 급등을 타고 과징금을 내고서라도 사전공시 없이 대규모 매도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입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백억원대 차익실현이 가능한 주가 급등 시점이라면 과징금을 내고서라도 매도할 것"이라며 공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실현 차익금 대비 너무 적은 과징금 
 
대주주들이 주가 급등 시점을 노려 대규모로 지분을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는 사례는 빈번합니다. 사전공시제도의 과징금이 최대 20억원으로 설정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불법적 매도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알테오젠(196170)은 올해 들어 바이오 테마에서 이목을 끌며 주가가 160% 넘게 급등했습니다. 이 시점 정혜신 전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 2월 머크와의 대규모 독점 계약 체결 소식 이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을 통해 3164억원 어치의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2차전지 테마주로 급등했던 금양(001570)도 4695 배터리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 3월 주가가 급등했는데요. 류광지 회장은 배터리 개발 소식으로 주가가 상승하자 블록딜로 2439억원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에코프로머티(450080)의 2대 주주인 블루벤처스(윤관 대표)도 2차전지 관련 호재로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블록딜을 통해 올해만 4550억원 이상의 매각을 단행했습니다. 대원전선(006340)의 최대주주 갑도물산(서명환 회장)도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소식에 블록딜을 통해 올해 들어 150억원 넘게 차익을 얻고 있습니다. 화천기계(010660)TS트릴리온(317240) 등도 주가 고점에서 대주주 등이 대규모 지분을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거둔 사례로 확인됩니다.
 
과거 코로나 치료제 개발 이슈로 주가가 급등했었던 신풍제약(019170)도 송암사(장원준 대표)가 당시 블록딜로 1680억원을 매각한 바 있습니다. 신풍제약 자사주도 홍콩계 투자회사에 2154억원 어치를 매각해 총 3800억원에 달하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사전공시 악용한 시세조종 우려
 
공시를 무시하고 대주주 등이 지분을 매도할 것이란 우려와 더불어 사전공시를 활용한 시세 조종 행위가 가능할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상장사 내부자가 매매하기 전에 매수 및 매도 계획을 공시하겠지만, 대규모로 주식을 매수할 것처럼 공시하고 실제로는 매수하지 않아도 해당 공시 상에선 과징금 20억원이 상한선이기 때문입니다. 대주주의 매수 계획을 호재로 인식한 시장 참여자들이 관련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세력이 개입된다면 주가 상승 폭은 더욱 커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가 특별한 이유 없이 단순 주식 추가 취득을 공언했지만, 시장에서 생산될 풍문이나 호재성 재료 등이 양산되는 것 등은 막을 수 없습니다. 대주주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가 급등이 이어지게 되고, 실제 과도하게 오른 주가로 대주주는 매수 계획을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증시 전문가들도 제도적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진단합니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예전부터 주가 띄우기나 시세조종의 경우 누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잡아낼 수가 없었던 사례가 많았다"면서 "이번 사전공시 제도도 사실상 당국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때문에 겁만 주려는 거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사전공시 제도는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시장 경제 원칙에 맞지 않다"며 "매수 또는 매도 계획을 공시하게 되면 이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한국 증시에 매년 100개의 기업이 상장이 되고 20개의 기업의 부도가 난다 "면서 "많은 코스닥 기업들이 건전하게 영업을 하기보다는 주식시장에서 머니 테크에 많이 이용한다"면서 "매년 주가 조작이 100건 정도 일어나지만 실제 재판을 받는 비율도 10%가 안된다. 주가 조작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전공시제도 역시 공시 사항이다 보니 과징금 상한 20억원은 공시 위반에 따른 페널티"라면서 "해당 공시의 목적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 매매를 하는 대주주 제재의 목적이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사진=금융위)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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