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윤석열씨가 12·3 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맞섰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은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국회 앞부터 광화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 남태령까지 이어졌습니다. <뉴스토마토>는 3일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친위 쿠데타에 맞선 시민들의 행보를 돌아봤습니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쯤 윤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즉시 국회로 출동했습니다. 국회는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윤씨는 국회부터 장악하려고 했던 겁니다. 계엄 소식을 들은 시민들도 곧장 국회로 향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국회부터 점령하려고 할 것이라는 걸 간파한 겁니다. 시민들은 하나 둘 여의도로 모였습니다. 국회를 지키러 모인 군중은 경찰의 비공식 추산으로 4000여명에 달했습니다.
2024년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운집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출입을 통제하자 분노에 가득 찬 시민들은 저마다 "문 열어", "계엄 철폐" 등을 외쳤습니다. 일부는 촛불을 들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몸을 미는 등 몸싸움도 벌어졌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국회 상공엔 어느새 10대 남짓의 군용 헬기가 날아왔습니다. 계엄군이 탄 헬기였습니다. 국회 앞 대로에도 군용 트럭이 등장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 막아", "입법부를 지키자"를 연호하며 군인들을 둘러쌌습니다.
다음날인 4일 새벽까지 국회 앞에서 자리를 지키던 시민들은 새벽 1시, 시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시각 국회에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찬성 190표로 가결된 겁니다. 계엄이 선포되고 155분 만이었습니다. 국민의 손으로 계엄을 무산시킨 겁니다.
현장에는 즉석으로 단상이 마련됐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레 마련된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 속에 품었던 말들을 꺼내놓았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 20대 여성은 단상에 올라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을 보고 부끄러워 참여하게 됐다. 우리는 피로 쓰인 역사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계엄을 막아낸 시민들의 구호는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바뀌면서 점차 "윤석열을 탄핵하자"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불법 비상계엄을 일으킨 내란수괴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광화문에는 12월4일부터 5일까지 연이틀 탄핵을 외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은 6일엔 국회 앞에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윤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12월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진행됐습니다. 윤씨 탄핵을 염원하는 시민들은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본부'가 주최한 3차 총궐기 대회에선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표결은 부결됐습니다. 국민의힘이 대거 불참해 정족수 부족으로 투표가 성립되지 못한 겁니다.
분노와 허탈에 휩싸인 시민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윤석열 탄핵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4일 탄핵소추안은 다시 표결에 부쳐졌습니다. 시민들은 또 여의도로 모였습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집회 참가자를 200만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날 국회는 드디어 윤씨의 탄핵을 가결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가결 204표"라고 발표하자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사람들, 하이파이브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최 측 사회자가 "국민이 승리했다"고 외치자 집회 참가자들은 재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날 국회 앞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됐습니다.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윤석열씨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윤씨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시민들의 집회 장소는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됐습니다. 불법 비상계엄을 일으키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윤씨에게 남은 건 수사기관의 체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과정에서는 시민들이 '남태령 대첩'이라고 부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12월 중순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를 몰고 광화문으로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윤씨 퇴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2024년 12월21일 서울시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과 대치해야 했습니다. 경칠이 트랙터들의 서울 진입을 허용하지 않은 탓입니다. 트랙터와 거기에 탄 농민들은 졸지에 남태령에서 경찰의 '인간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이들과 연대하려고 남태령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남태령엔 경찰 추산 4000명, 주최 측 추산 3만명이 운집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이튿날인 22일 차벽을 해제했습니다
이후 해가 바뀌었어도 시민들은 집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윤씨가 체포된 뒤엔 구속을, 구속된 뒤엔 헌법재판소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들이 잇따랐습니다 윤씨가 3월7일 법원의 구속취소 판결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자 시민들은 그의 석방을 규탄하는 집회도 열었습니다. 이처럼 시민들의 힘이 모인 끝에 헌법재판소는 4월4일 윤씨에 대한 파면을 선고했습니다.
2024년 12월22일 서울시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행진을 계속할 수 있게 되자 시민들이 환호의 의미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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