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성희 연주자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토마토홀에서 첫 번째 독주회 '꽃이 피다'를 진행했다. (사진=량성희 제공)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적막한 공연장을 울리던 바이올린 선율이 이내 구슬피 우는 듯한 해금의 소리로 변했습니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진 활은 이미 현을 떠났지만 깊은 여운이 공기를 감쌌지요.
지난달 26일 서울 합정동 토마토홀에서 열린 량성희 연주자의 소해금 독주는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묘한 감정을 불러왔습니다. 음악 자체에만 집중해달라는 연주자의 부탁처럼 곡조에서는 북한의 혁명 음악 색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레 국악을 이야기 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 '한'의 정서가 묻어났습니다. '조선 클래식'을 대표하는 악기 다웠죠.
이름 조차 생소한 소해금은 북한의 민족악기 개량 사업으로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인 전통악기인 해금을 합주에 적합하게 개량한 것인데, 국악의 5음계 대신 서양 음악의 7음계를 채용했고 2개 였던 현의 갯수도 4개로 늘렸습니다. 또한 현의 길이도 늘려 음역폭을 넓혔는데 서양 악기의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의 소리를 소해금 하나가 모두 포괄합니다.
서양 악기 중 바이올린에 해당하는 소해금은 북한의 민족관현악의 중심입니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바이올린 연주자가 맡듯, 북한 민족관현악단의 악장은 소해금 연주자가 담당하는데, 량성희 연주자는 북한 유일의 국립해외예술단 '금강산가극단'의 단장을 오랜 기간 역임했습니다.
이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재일교포 연주자 량성희씨가 고향인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조선 클래식'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꿈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낯설 수 밖에 없는 조선 클래식을 설명하면서 이념의 색안경을 벗고 음악 그 자체로만 봐달라는 당부는 매번 뒤따릅니다.
량성희씨가 지난달 26일 열린 국내 첫 독주회 '꽃이 피다'에서 소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량성희 제공)
역시 음악은 백 마디의 설명보다 한 번의 감상이 필요한 법. 바이올린 같으면서도 바이올린 같지 않은 음색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날 공연의 문을 연 '울지 말아 을남아'는 북한의 유명한 혁명가극입니다. 하지만 음악 그 자체로만 들어보자면,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뒤를 잇는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 수록곡 '리별의 시각은 다가 오는데' 역시 고전적 명작이라는 별칭에 걸맞는 웅장함이 있었죠. 특히나 협연을 했던 피아노 연주가 멈추고 소해금의 독주가 진행된 부분에서는 작은 악기 하나가 공연장 전체를 채우는 존재감이 엄청났습니다.
소해금으로 서양 클래식 연주를 듣는 맛도 새로웠습니다. 분명 귀에 익숙한 선율인데 소리가 주는 울림이 달랐기 때문이죠. 량성희 연주자 본인도 연주 기회가 많지 않아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연습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는데요. 얼핏 듣기에는 음정이 불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소해금 특유의 비브라토가 애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서양 음악을 통해 들으니 소해금의 매력이 한층 더 커지는 것 같았죠.
고향에서의 첫 독주를 시작으로 량성희 연주자는 세계를 향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재일 조선인으로써 최고의 자리에서 조선 클래식을 알리고 싶다는 포부만으로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 동시에 량성희씨는 소해금 연주를 통해 꽉 막혀있는 남북 소통의 통로를 열고 싶다고 합니다.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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