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국내 도로안전에서부터 '대한민국 자율주행'의 미래까지. 모두 한국교통안전공단(TS)이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 7일 경기 화성시 TS 자동차안전연구원의 'K-시티'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65만평(215만㎡), 축구장 300개 규모의 국내 최대 자율주행 시험장입니다.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촉진을 위해 조성돼 올해에는 '3단계 고도화'까지 마쳤습니다. 실제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을 재현해 차량 대응 능력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중형 버스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한 시험 차량. 운전자가 비상시에만 개입하는 '레벨3' 수준에 해당한다. (사진=뉴스토마토)
최소 투자로 글로벌 11위…배경은 K시티 '무상 지원'
이날도 K-시티에서는 여러 기업의 자율주행차 시험이 한창이었습니다. 기자는 중형 버스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3'(조건부 자동화) 수준에 해당합니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지만 핸들을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스템이 요청할 때, 즉 비상 상황에서만 개입하는 방식입니다.
기자는 한동안 자율주행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운전할 때와 비교해 체감되는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솔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뒤에야 핸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뒤따라온 '로이'(Roii)는 핸들과 페달은 물론이고 운전석 자체가 없었습니다. '레벨4'(고도 자동화) 수준이어서 비상시에도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대응합니다. 주변 교통 환경을 인식하기 위한 센서(카메라 8대, 레이더 5대, 라이더 4대)가 차량 곳곳에 탑재돼 360도 전방위 인식이 가능합니다.
'기상환경재현시설'에 들어선 8인승 자율주행 차량 '로이'. (사진=뉴스토마토)
로이는 스스로 방향 지시등을 켜 차선을 바꾸고, 자연스럽게 신호에 맞춰 멈추고 출발했습니다. 외관뿐이 아니라 주변 사물을 인식해 '이미지' 형태로 실시간 구현하는 내부 모니터는 자율주행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개발사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 관계자는 "기술 면에서 미국·중국과 2년 정도 격차"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사는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가이드하우스'가 발표하는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2024년 기준)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1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개사 중 가장 적은 누적 투자금 520억원(2023년 12월 기준)으로 거둔 성과입니다. 정부가 자율주행차를 실제 도로에서 굴릴 수 있도록 관련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TS가 K-시티를 무상으로 개방해 반복 시험을 돕는 지원이 기반이 됐습니다.
TS는 K-시티 준공 이듬해인 2019년 3월부터 국토교통부 지원으로 자율주행 관련 중소기업·스타트업 등에 무상으로 시설을 제공해 왔습니다. 기술은 갖췄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회사는 자율주행의 핵심인 '주행 데이터 누적'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입니다.
지난 5년여간 국내 기업이 K-시티를 이용한 시간은 2만8815시간(약 1200일), 절감한 연구 비용은 103억4000만원에 달합니다.
K-시티 내부에는 자동차전용도로와 도심부 등 실제 도로와 유사한 핵심 환경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특히 호우·안개를 만들어내는 '기상환경재현시설'과 GPS(위성항법시스템)가 완전히 끊기는 '재밍(전파방해) 터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커가 실제 이탈 없는 차량에 '차선 이탈' 신호를 보내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 (사진=뉴스토마토)
"최악을 먼저 상정한다"…미래 준비하는 'TS 의지'
TS는 자율주행차 해킹 가능성을 전제로,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실제 공격 사례는 아직 없지만, 이스라엘 보안업체 '업스트림 시큐리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차량사이버공격요소(CVE)는 연평균 89.1% 증가했습니다. 자동차에 전자장치와 무선 연결 기능이 늘어나면서 해킹 위험도 함께 커졌다는 분석입니다.
올해 준공된 사이버보안센터에서는 실제 '최악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았는데도 원격으로 시동을 끄거나, 주행 중에는 열리지 않아야 할 트렁크를 강제로 열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보안 기능을 꺼둔 상태에서 진행한 테스트입니다. 현실적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해커가 이들 보안을 모두 뚫고 블루투스·와이파이 등 외부 통신창구를 통해 내부 네트워크에 침입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해커가 차선 이탈이 없는 차량에 '차선 이탈' 신호를 강제로 보내는 공격 시연도 진행됐습니다. 바퀴가 크게 흔들리며 실제 도로였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TS는 교통안전 분야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미리 상정해 시험해야 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화성=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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