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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까지 내려가 한 번도 못 본 춤 캐내요"
김설진·정훈목이 말하는 벨기에 '피핑 톰' 무용단
2013-10-09 16:59:16 2013-10-09 17:03:0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현대무용의 메카라 불리는 벨기에의 '피핑 톰' 무용단이 오는 11월 2일과 3일 <반덴브란덴가 32번지>라는 작품으로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피핑 톰 무용단은 창단 초기부터 무용, 음악, 극적 요소를 결합한 파격적인 형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특히 예리한 시선으로 동시대를 포착해 인간 조건과 삶의 비극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에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는 <반덴브란덴가 32번지>는 가브리엘라와 프랭크의 공동 안무작으로, 2009년 벨기에 KVS극장에서 초연했다. 벨기에, 영국, 브라질,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 5명과 메조 소프라노 1명이 출연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설진과 정훈목 등 30대의 한국 무용수가 두 명이나 출연한다는 점이다. 김설진과 정훈목은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2008년 무렵부터 피핑 무용단 단원으로 합류했다. 다음은 이들이 전하는 피핑 톰 무용단에 대한 이야기다.
 
◇김설진 "피핑 톰이 아프리카에 있었다면 아프리카에 갔을 것"
 
(사진제공=LG아트센터)
 
-피핑 톰 단체에 단원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2004년과 2006년 한국에 내한했던 피핑 톰 무용단의 공연을 봤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피핑 톰 무용단에 대해 알아보게 됐다. 2008년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벨기에로 갔으나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비엔나에서 한번 더 오디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오디션에 참여했다. 피핑 톰이 아프리카에 있다면 아프리카에 갔을 거다. 그만큼 좋았다!
 
-왜 피핑 톰이었나?
 
▲혼자 고민을 했던 것이 연극과 무용에 대한 융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피핑 톰이 가장 잘하고 있더라.
 
-<반덴브란덴가 32번지>는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설명해 달라.
 
▲맞다. 처음 무용수들을 사무실로 불러서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일본어, 불어가 섞여서 나오는데 거의 알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한 것이 오히려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영상이 끝나자 안무가가 던진 말은 '무엇이 하고 싶냐?' 였다. 무용수들은 작품의 모든 개발 과정에 참여한다.
 
-그래서 크레딧에 김설진이란 이름이 올라간 것인가?
 
▲그렇다. 연습단계에서도 정해진 룰이나 클래스가 없다. 왜냐면 클래스를 하면 결국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개인의 아름다움을 발전시키는 것을 요구하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무용수들은 자신들만의 것을 쏟아낸다.
 
-연습 과정은 어땠나?
 
▲역시나 가장 재밌었던 과정은 5개월간 연습하면서 쌓아온 이미지, 움직임, 컨셉트, 관계 등 방대한 소스를 어떻게 1시간 20분으로 편집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 몇 백 개의 스티커를 펼쳐놓고, 1시간 20분에 맞게 '선택'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정말이지 공연 직전까지 짜내고 짜낸 작품이다. 공연 20회를 하고서야 작품이 완성됐다. 지금은 투어를 통해 작품이 아주 무르익은 상태다.
 
-공연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았나?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에곤쉴레 샤갈, 클림프, 뭉크의 자화상 몇 편을 한참 지켜봤다. 그리고 그걸 내 몸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그렇게 발전시켰다.
 
-무용수로서 본인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 우선 안무가들이 다루기 힘들어 한다. 납득하기 힘들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을 한다. 즉, 아니면 아니다.
 
◇정훈목 "바닥 끝까지 내려가 한 번도 못 본 것을 캐내는 무용단" 
 
(사진제공=LG아트센터)
 
-해외 무대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2008년 신진예술가 지원사업에 선정돼 비엔나에 갔다가 우연히 오디션 공고를 보고 많이 망설였다. 피핑 톰이란 이름은 들어봤지만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허성임(벨기에 니드 컴퍼니소속) 누나한테 물었더니 자신도 같이 일해보고 싶은 단체라며 적극 추천을 했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한번 평가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다.
 
-오디션은 어땠는지 설명해달라.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일주일간 오디션을 봤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하려는 것의 이미지가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오디션에서 두 안무가는 '그 사람의 캐릭터'를 다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얘길 들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같은 오디션에서 설진이와 함께 발탁됐다.
 
-그들이 특별히 요구했던 것이 있었나?
 
▲피핑 톰은 콜렉티브 그룹(Collective group)으로 전체 작업을 같이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눈 덮힌 고립된 마을'과 같은, 최소한의 단서를 던져주고 뭐든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임, 캐릭터, 스토리, 관계 등 무엇이든 아이디어를 내서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다. 피핑 톰이 다른 벨기에 단체와 비교해 다른 점은 '희소성'을 제일 강조한다는 점이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것은 다 빼고, '바닥 끝까지 가서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캐낸다.'
 
-두 안무가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프랭크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고, 결말을 열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프랭크는 록앤롤이다. 굉장히 와일드한 면도 있지만 격려를 많이 한다. 반면, 가브리엘은 진중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조화가 참 좋은 것 같고 많이 배운다.
 
-한 공연에 한국 무용수가 두 명 출연하는데 느낌이 어떤지?
 
▲각자의 이름이 아닌 '코리안 2명이 있다'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 작품에 비해 한국인의 존재가 매우 커 보이는 작품이라는 게 특징인 것 같다.
 
-<반덴브란덴가 32번지>의 관람 포인트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그냥, 일단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공연 맨 마지막에 보면 배우 마리아 오탈을 추모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80세로 이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6개월을 같이 작업했는데 프리미어 10일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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