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 전망이 암울하다.
유동성 장세로 골디락스 경제를 얘기하던 지난해 상반기 분위기와는 영 딴 판이다.
지난해 9월 18일 미 연방은행(FRB)은 5.25% 이던 기준금리을 50bp 전격 인하 하면서 더 이상의 금리 인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악령은 아직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작년 9월 18일 금리인하로 미국 FRB 금리는 4.75%로 조정됐다. 이후로도 FRB는 두 차례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10월 31일과 12월 11일 모두 두차례에 걸쳐 각각 25bp 인하가 이루어지며 현행 FRB 기준 금리는 4.25%.
지난 주말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재정정책에 실망한 미국 투자가들은 오는 1월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금리 인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시장이 예상하는 금리 인하 수준은 50bp를 이미 넘어서 75bp 인하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미 증시를 바라보는 기관과 투자가는 속이 타 들어 간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회장인 마틴 펠트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50%로 분명히 높아졌다고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밝혔다. 1920년 설립된 전미경제연구소는 87년의 역사와 600명의 이코노미스트가 활동하는 미국의 씽크 탱크이다.
전미경제연구소는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소비 불황이 미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라 진단했다. 바꾸어 말해 소비자들의 소비가 줄지 않는다면 미국의 경기는 쉽사리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미국의 소비가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의 70% 이상을 소비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5% 이상 높아질 경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미국은 2001년에도 경기 침체를 겪은 바 있다. 당시 미 정부는 감세 조치를 포함한 경상 GDP의 1.3%인 1288억 달러의 재정정책을 통해 단기 경기 부양을 실시한 바 있다.
18일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경기부양책도 이와 유사한 수준이다. 개인의 세금 환급과 기업의 세금감면 등 경상 GDP의 1% 수준인 145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미국 투자자와 민주당에서도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인 수혜 내용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실질적인 정책의 내용으로는 주택 경기 하강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2001년 기술주 버블로 인한 붕괴는 약 8개월간 지속됐다. 당시 GDP 감소 폭은 0.4% 하락에 그쳤고 소비의 감소폭은 미미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경기 침체는 주택가격의 하락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01년도의 경기 침체 수준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이다.
미 투자은행의 부실 여파는 미 채권보증기관의 부실로 전이되고 있다. 뱅크오브 아메리카는 미 채권보증기관인 MBIA의 투자등급을 매수에서 최근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최대 채권보증사인 MBIA의 투자등급 하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0일 신용평가사인 S&P는 MBIA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고, 피치사도 MBIA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하향 조정했다.
MBIA는 사모펀드(PEF)인 워버그 핀커스로부터 지난해 12월 10억 달러의 수혈을 받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자산담보부증권(CDS)의 부실로 인해 자본잠식 위험에 직면해 있어 미 투자은행의 모기지 부실 상각 여파가 여타 금융기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미 MBIA, 암박 등 모노라인(채권보증회사)의 시장 규모는 2조 4천억 달러에 달한다. 핌코의 빌 그로스 채권펀드 매니저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 부실로 인한 자산담보부증권(CDS)의 부실 규모가 2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 투자은행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지난해 11월 7.63% 까지 치솟은 점과 주택 가격 하락으로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상반기까지 어려운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일시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국도 긴장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의 창 타오 국제경제팀장은 21일 참석한 금융포럼에서 "미국의 소비성장세가 둔화되면 중국의 수출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창 타오는 "미국의 민간소비 감소는 중국 수출에 악재로 작용해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시아개발은행도 지난주 분석보고서에서 세계경제와 아시아경제의 비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006년도 기준으로 36%에 달한다.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중국도 미국 경기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의 경기 둔화가 올해 중국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10%의 경제 성장 전망에서 하락, 두자릿 수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한국 경제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경기 침체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타격은 국내 총생산의 70%에 달하는 수출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경제 성장이 1% 감소할 경우 아시아신흥시장(이머징 마켓)의 성장률은 0.1%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국내 기관의 분석은 다소 보수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1% 감소할 경우 국내 경제성장률은 0.5%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 경제의 경우 최근 원 달러 환율이 950원 가까이 상승하며 수출 여건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미국의 소비 위축으로 인해 중국보다도 더 많은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전자, 자동차의 타격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기의 침체 움직임이 중미 간 교역에 영향을 주고 있어 한중간 교역 규모의 감소세를 일으키는 중층적 감소 효과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간 교역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12.5%로 감소했지만 한-미, 한-중 교역의 연쇄적 효과가 국내 경제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가 올해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가 장기화 될 경우 국내 증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덧붙였다.
국내 경기가 내수를 바탕으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시장 통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했고 3대 백화점 매출액도 2.2% 감소하는 등 소비 경기에도 불안감이 드리운 상태이다.
지난해 12월 국내 생산자물가지수도 5.1% 상승하며 물가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2월 소비자 물가지수도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 관리 목표치인 3.5%을 넘어 3.6%를 기록했다.
더불어 원유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곡물 가격의 고공 행진 등 미 경기 침체 이외에도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 산적해 있어 정부의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 시점에서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불러 올 국내 금융, 외환시장의 교란요인에 대해 정부가 체계적인 대응책을 착실히 마련해 나아가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미 경기 침체가 2001년의 침체 양상보다는 심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기업의 노력이 한 방향으로 응집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뉴스토마토 이현민 기자(roy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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