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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눈을 부릅뜨고 회초리를 들 때다
2016-04-21 06:00:00 2016-04-21 0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선거가 끝났다. 많은 이들이 놀랐다. 여당의 참패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소위 ‘진박논쟁’이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데엔 다들 공감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준엄한 심판이 낳은 결과였던 것이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진심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권력자는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진실한 사람’을 감별하여 사무실에 사진을 걸어둘 수 있는 은혜를 베풀고자 했다가 호된 심판을 받았지만, 선량을 감별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했을까.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선종순 선생이 소개한 옛글이 눈에 띄었다.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선조20) ~ 1638(인조16)] 선생의 시문집인 「계곡집」4권에 나오는 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오늘날 대부와 사(士)라 하는 자들 치고 아마 이 붓과 닮지 않은 자는 적을 것이다. 몸은 의관을 잘 차려입었으며 말은 조리가 있으며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으며 근엄한 얼굴을 의젓하게 하고서 지내니, 그들을 보면 모두가 군자요 바른 선비 같다. 그러나 남이 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있거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을 만나게 되면 뜻을 접고 욕심을 부리니, 마음에 어질지 못하고 행동에 의롭지 못한 자는 모두 이러하다. 대개 겉모습은 빼어나고 번지르르 하지만 그 속은 개털인 것이 이 붓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데, 사람을 관찰하는 자가 자세히 살피지 않고서 겉모습만 보고 속까지 믿어 버린다. 그러므로 간사한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선비는 왜 붓을 보며 간사한 사람을 떠올렸을까. 옛날부터 ‘천하의 제일가는 붓’이라고 중국인들조차 찬탄하던 족제비의 꼬리털로 만든 붓, 황모필(黃毛筆) 때문이었다. 장유의 벗 이생(李生)도 특별히 부탁해서 황모필 한 자루를 얻었는데, 막상 글씨를 쓰려니 겉에만 족제비의 꼬리털을 살짝 입혀놓고 속은 개털로 채운 가짜였던 것이다.

 

장유는 사기를 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가짜 황모필처럼 겉과 속이 다른 위정자들의 심각한 이중성을 개탄하며,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얕은 식견에도 일침을 놓는 글을 남겼다.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이 군자연하며 딴 짓을 하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혜안을 갖춘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성현들조차 이 문제를 고민하였기에, 맹자는 “상대의 말을 들어보고 눈동자를 보면 절대 속내를 숨기지 못할 것”이라 하였고(『맹자』「이루 상(離婁上)」제15장), 공자는, “하는 일을 보고 어떻게 하는지를 살핀 다음 편안하게 하는지 억지로 하는지를 깊게 살피라”고 하였다는데(『논어』「위정(爲政)」제10장), 둘 다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돈과 자리를 탐하는 이익 추구가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곡학아세와 지록위마가 판을 치는 권부를 보며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를 찾고자 했던 민초들의 몸부림이 이번 총선에서 놀라운 결과를 낳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옛글을 소개한 신종순 선생의 말씀처럼, “붓을 사는 사람이 좀 더 현명하게 면면을 꼼꼼히 따져보고 의식적으로 개입하여 겉이 아닌 속을 보는 안목을 키워나갈 때 붓 매는 사람의 양심도 따라서 자라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을 보는 안목은 권력자에게도 필수적인 일이겠으나 무능과 불통 앞에서는 무망하다는 것을 수회 경험한 지금, 유권자들의 안목과 심판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투표를 통해 보낸 심판과 성원을 바탕으로 우리의 대표자들이 정말 사심 없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하여 주기를 바란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을 앞세워 군자인 척 하지 말고, 남이 보지 않는 은밀한 곳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당당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 주기를 소망한다.

 

4. 13. 총선을 거쳐 사흘 간격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부끄럽고 슬퍼해야 할 날(4. 16.)과 가장 자랑스러운 날(4. 19.)이 이어졌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명령은 준엄했다. 이제 그 결과를 완성하고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때다. 눈을 부릅뜨고 회초리를 들자. 타협 없이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도록 황금분할을 만든 위대한 유권자들의 선택에 정치인들은 가장 진실하고 현명한 모습으로 답해야 한다. 최소한 간사한 사람이 더 이상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만은 결단코 막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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