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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세금 낭비한 국정 역사교과서
2016-12-02 06:00:00 2016-12-02 06:00:00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 제목이다. 추락은 날개가 있는 것들만 할 수 있다. 날개가 있어서 높이 날아야만 추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날개가 없다면 추락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제1의 목표인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공개되었다. 자기 아버지 탄신 100주년 잔칫상에 아버지를 찬양한 교과서를 떡하니 올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효심은 갸륵하나 국정과 가정사를 구분하지 못하면 안 된다. 한국사 국정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라오스나 북한 정도가 사용하는 국정교과서를 써야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교과서가 공개되었으니 다시 한 번 여기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고천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안상현 박사는 공개된 국정교과서에서 과학사 부분만 살펴봤다. 그에 따르면 잘못된 게 한두 곳이 아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중학교 역사(1) 154쪽에 나와 있는 곤여만국전도는 마테오리치가 그린 게 아니라 페르비스트가 1700년경에 그린 후대의 것이다.
 
중학교 역사(2) 38쪽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 중 태양의 흑점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태양의 흑점을 서술하려면 달의 표면이 편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는 사실도 서술해야 했다. 흑점보다는 목성에도 달이 있으며 금성의 크기와 모양이 변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천동설을 부정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과학혁명과 계몽사상을 다룰 때는 데카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볼테르는 거론하면서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또 계몽사상은 세계 무역의 발달에 따른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틀의 넓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마치 과학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것처럼 기술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62쪽에서는 천문 현상이 농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서술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천문 현상으로 시절을 가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별자리를 보고 농사를 지을 이유가 없다. 별자리와 기후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또 고구려 무덤 벽화에 그려져 있는 별자리가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졌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무덤을 장식한 벽화에 정확한 천문도가 그려진다는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65쪽에서 또 반복한다. 창천1호분 그림에는 고구려인의 별자리에 대한 관심은 후대 천문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교과서를 짐작으로 쓰는가?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천문학이 날씨를 다룬다는 이야기는 122쪽에도 나온다. “날씨는 왕조의 정통성과도 관련이 있었고, 농업이나 어업 등과 직결되었기에 이를 다루는 천문학과 기상학을 중시하여 연구하였다.” 당시에는 기상학이란 말도 없었다. 그저 측우기를 설치하고 비의 양을 기록했을 뿐이다. 여기에 그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졌고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실용적인 의도로 만든 것이 아니다. 옆에 있는 그림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도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칠정산도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도라고 했지만 틀린 이야기다. 세종 때 만든 천문관측기기를 다 열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혼천의 대신 규표를 넣어야 했다. 세계 최초의 측우기에 대한 설명은 읽어서 이해할 수조차 없다. 금속활자에 대한 부분은 너무 짧다.
 
고등학교 한국사 152쪽에는 연행사들이 귀국하면서 곤여만국전도와 천리경, 화포, 자명종을 들여왔다고 했지만, 이 가운데 천리경, 화포, 자명종은 연행사들이 아니라 정두원이 가져온 것이다. 이 서술을 보고서 학생들은 무엇을 짐작할까? 화포라고 하면 대포를 생각하고 자명종은 머리맡에 놓는 작은 시계를 생각하지 않을까?
 
단지 과학기술사 부분만 살펴봐도 틀린 내용이 부지기수다. 역사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전문가 없이 졸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역사 전문가들은 짝퉁 교과서에 참여하지 않는다. 박근혜 씨가 고집스럽게 추진한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추락하지도 못한다. 날개도 없고 엔진도 없기 때문이다. 세금을 또 이런 식으로 썼다. 이 와중에 어버이연합은 너희들 증 박근혜보다 깨끗한 자가 돌을 던져라!”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아서라. 정말 돌이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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