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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보수 아이콘' 김기춘 실장의 말로
2016-12-08 17:01:52 2016-12-08 17:40:57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7일 최순실 국정조사 2차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멀게는 자그만치 유신시대부터 불과 엊그제까지 보수 또는 수구세력의 히어로이자 아이콘이라 불렸던 이가 무능력자 흉내를 내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동정을 구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전반부 '왕실장'으로 불리며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누구인가? 지난 1964 검사로 임관해 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뒤 2년 뒤인 74년 30대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다. 이어 81년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22대 검찰총장을 지냈고, 92~92년엔 법무장관까지 지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력을 가진 거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숱한 공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음습한 중정시절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지난 1991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부산 초원복국 사건 등에서 주역으로서 유감 없이 역량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15, 16, 17대 총선에서 내리 3선을 하면서 국회 법사위원장을 역임하며 보수정치세력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그가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할 당시 보여준 단호함 또는 표독스러움을 기억하며 아직도 치를 떠는 이들이 많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그야말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다. '기춘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리며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청문회 내내 거론됐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만 봐도, 그가 얼마나 종횡무진으로 권력을 휘둘렀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공작능력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를 넘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야권 인사 고소·고발 등 사법·입법부를 가리지 않았고, 언론길들이기, 민간기업 인사까지 마수를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아온 인생이 이러하다면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그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됐다. 대통령도 제대로 못만나고, 문고리3인방에 차단돼 보고도 제대로 못받으면서 무능하게 자리가 꿰차고 앉아 있었던 '뒷방 늙은이' 코스프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확신과 결기를 가지고 청문위원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게 차라리 그 다웠을 거라는 얘기다. 
 
압권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청문회 내내 족히 100번은 "최순실을 몰랐다"고 믿어달라고 하던 그는 네티즌이 제보한 피할 수 없는 영상증거가 제시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제보니까 최순실 이름을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 죄송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참으로 딱한 말로가 아닐 수 없다.
 
이우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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