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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해자는 괜찮은 걸까
모난돌
2017-02-13 12:08:23 2017-02-13 12:08:23
친구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네 말을 믿지만 ‘증거’가 없다.”
 
친구는 경황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자신이 들은 말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퇴근 후 집에 와서도 혼란은 지속됐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성희롱이 분명했다. 친구는 상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사실 친구는 자신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상사에게 알리는 것 자체를 고민했다. 혹시 자신이 ‘오바’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용기를 내 그 사실을 알렸고 돌아오는 대답에 이내 힘이 빠졌다. 너의 심정을 다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하나의 조언(?). 다음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으면 녹음기를 켜고 있어라.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 중 하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직장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희롱은 ‘사회생활’과 ‘농담’이라는 이름 아래 은밀하게 나타나고는 한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공공기관 400개와 민간사업체 1200개를 대상으로 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7844명 중 6.4%가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 그중 여성은 9.6%, 남성은 1.8%였다. 
 
성희롱 피해자의 78.4%가 성희롱을 신고하거나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 그 이유에는 남녀 간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남성의 경우 72.1%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였고 여성의 경우 50.6%가‘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성희롱 내용은 주로 언어적인 것이며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이 그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성희롱을 참고 넘어간 이유로 꼽힌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대부분 언어로 이루어지는 성희롱의 특성 때문에 성희롱 피해자들은 증거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거가 없다면 피해를 입증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란 어렵다. 또한 성희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역시 성희롱을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사진/지속가능바람
  
그렇기에 성희롱을 당했을 때 이를 처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녹음을 하거나 문자를 저장하는 등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또 성희롱을 당한 상황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남겨놔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했는지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격자가 있을 경우 증언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면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의 경우 그 증거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증거 확보가 불가능해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성희롱의 상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다 중요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고용노동부에서는 ‘고용노동부 법정의무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 하고 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른 것인데 업주는 전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연 1회 60분 이상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때 근로자 수가 10인 이하이거나 동성으로 구성돼 있다면 교육자료, 게시물 배포로 대체 가능하다. 교육을 실시한 후에는 외부 위탁교육기관의 수료증 등 교육실시 증빙자료를 보관해야하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200만원의 과태료 부과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가 법제화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형식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연 1회 60분 이상 실시해야 하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20분 만에 모든 것을 끝내버린다거나 모든 교육 내용을 형식적인 온라인 강의로 대체한다. 심지어는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교육 실시 확인사인만 받은 채 교육을 끝내기도 한다. 또한 교육 내용 자체가 부실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루하고 뻔한 시간 때우기 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학창시절의 성폭행/성희롱 예방교육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 회사원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어떤 행동이 성희롱인지 모호해 알 수 없어 교육의 효과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여전히 몇몇 교육 내용에서 성희롱 예방의 화살이 피해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A언론사에서 실시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의 내용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성희롱에 대한 현명한 여성의 대처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교육에서 그 방법으로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을 삼간다.’, ‘견물생심을 경계하라’를 제시하고 있다. 또 ‘생리 기간 중 ‘전 지금 그때예요’라고 남성을 자극하는 말을 하거나, 온 회사가 다 알도록 배를 잡고 다니지 마라’는 내용도 성희롱에 대한 ‘현명’한 여성의 대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 주체의 전문성 향상과 교육 내용의 질 향상이 시급해 보인다. 성희롱의 범위는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와 성희롱을 당한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등 보다 현실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을 둘러싼 사회의 인식도 변할 필요가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정의에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 포함되는 것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역설적인 현실을 내포한다. 피해자를 예민하고 그것 하나 농담으로 넘기지 못하는,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를 개선해야한다.
 
2012년 대구 중학생 학교 폭력 자살 사건 이후 학교폭력 관련 교육이 의무화됐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 교육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 역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이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 효과를 달성하고 있을까. 현 상황을 보면 다양한 교육 정책은 단순히 불타오르는 문제를 급하게 잠재우기 위한 보여주기 식 정책이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성희롱을 당한 후 친구는 직장에서 그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눈을 피했고 밥을 먹을 때에는 멀찍이 돌아가 자신이 그 사람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데 친구는 그렇지 않다. 분명 친구는 피해잔데, 성희롱 당할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당하는 중간에라도(친구는 충격에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조금 많이 이상하다. 이제 1년 365일 24시간 녹음기를 켜고 살아야 하나보다.
 
 
이산후 바람저널리스트  baram.newsTF
 
 
**이 기사는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 바람>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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