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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충돌…청, 경총 잡고 재벌개혁 기선제압
재계에 사실상 '경고' 메세지, 재벌 대변인 구조 국민 '공분'
2017-05-29 06:00:00 2017-05-29 06: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와 관련, 재계가 비판 입장을 내며 반발하는 듯했다가 기선을 제압당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침에 "정규직화가 민간부문까지 확산되면 기업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가 청와대로부터 세차례나 '경고'를 받았다. 정부는 경총의 반발로 촉발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재계와의 기 싸움에 눌리지 않고 집권 초 개혁을 강하게 밀고 갈 뜻을 재차 내비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박근혜 정부서 최순실과 함께 적폐 청산의 핵심으로 분리되면서 해체에 대한 요구가 거세자 이 자리를 경총이 메우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실상 재벌그룹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오던 전경련을 대신하는 모양새다. 
 
25일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정부의 대규모 정규직화를 우려하는 발언을 하자 정부는 잇따라 유감을 표시, 재계에 사실상 '경고'를 보냈다. 26일 박광온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경총의 발언은) 지극히 기업적 입장에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며 "일자리 문제에 책임 있는 핵심 당사자인 경총의 목소리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으며, 같은 날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 "(대규모 정규직화를) 재계가 압박이라고 느껴야 한다"며 "재벌은 기득권을 절대 못 놓지 않아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그대로 간다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도 "경총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문제 등 일자리 문제에 대해 정부·노동계와 함께 책임질 당사자인데, 성찰·반성 없이 갈등을 일으킬 발언을 함으로써 주요 국정과제인 일자리 문제가 표류하지 않을까 굉장히 염려된다"고 날을 세웠고, 27일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총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새 기업정신과 풍토를 만드는데 앞장서면 좋겠다"며 재계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국정기획자문위와 청와대, 여당이 잇따라 재계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과 관련, 청와대가 작심하고 재계의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라는 평가다. 국정기획자문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곳이며,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초부터 국정과제가 흔들리면 앞으로 있을 다른 개혁기조 역시 어그러질 수밖에 없으므로 재계의 반발을 초장부터 막겠다는 심산이다.
 
정부와 여당의 강경 행보에 재계는 '뜨끔'해진 모습이다. 그간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방침에 변변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가 슬쩍 운을 띄웠지만 호된 역풍만 맞은 상황이다. 재계는 지난 10일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후 김상조·장하성 교수의 입각, 4대강 전면 재조사, 비정규직의 대규모 정규직화, 상법개정안 처리 움직임 등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방침에 전혀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 정권에서 삼성그룹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의 핵심 구성원이 국정농단 사태에 첨병역할을 하며 민심은 '반재벌'로 확고해진 탓이다. 각종 자신의 기업과 관련한 '세무조사' 무마와 '인허가' 비리 등을 저지르며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에도 경총은 국정기획자문위-청와대-여당의 연쇄 경고가 있은 후 즉각 "(정규직화 우려 발언은)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반대할 의도가 아니었다"며 "정규직 전환 문제를 풀기 위해 기존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어 경총은 29일 대책회의를 열고 정규직화에 대한 입장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간 재계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경총의 태도로 볼 때 갑자기 정규직화에 찬성하지는 못하겠지만, 새 정부 출범 초 정부와 여당의 경고를 받은 만큼 정규직화에 찬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경총을 통해 정부에 '간'을 보려고 했던 재계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됐다.
 
경총과의 이번 전초전을 통해 문재인정부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노선에서 초반 승기를 잡은 모습이다. 그간 정부와 재계는 개혁을 두고 극도의 긴장 상태를 보이며 누가, 어떤 식으로 기선을 잡을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정부는 정규직화 문제에서 개혁에 대한 강경함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마침 새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가 매우 높아 개혁의 적기로 꼽힌다. 26일 갤럽이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 직무수행 지지도는 전주 87%에서 1%포인트 더 올라 88%를 기록했다. 특히 세대별로는 모두 70%를 넘었고, 이념성향별로는 보수층에서도 60%대의 지지를 받았다. 또 추미애 대표가 경총을 직접 압박한 데서 드러나듯 두 당으로 쪼개진 야권은 여당을 견제할 수도 없고 재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어 문재인 정부로서는 더욱 유리한 국면이다. 
 
자료/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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