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원숭이처럼 투쟁하고 침팬지처럼 연대하자
입력 : 2017-06-09 06:00:00 수정 : 2017-06-09 10:58:56
베르사유라는 지명에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연관어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장미. 베르사유 궁전에 화려한 장미 꽃밭이 있어서가 아니다.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1970년대 초반에 나온 일본 만화책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2000년대에 KBS와 EBS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어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미 한참 전인 1980년대에 나온 해적판 만화책은 당시 대학생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연관어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혁명. 그렇다. 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으며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다룬 만화다. 기억나는 만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 오스칼은 어린 나이에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시집 온 황태자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섬기는 근위대장이다.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람둥이이면서 사치벽도 심하다. 마치 요즘 TV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재밌다. 그런 와중인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오합지졸 시민군이 정부군의 화력이 밀리는 것은 당연지사. 이때 오스칼은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돕다가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혁명의 불길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번지고 마침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만화로 혁명을 배운 한심한 놈이라고 비웃지 마시라. 나도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먼저 종로서적 출판사에서 나온 문고판 『프랑스 혁명』을 열심히 읽었다. 그래도 프랑스 혁명이라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대학에서 강의도 들었다. 당시 연세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김동길 교수의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이 강의는 어찌나 인기가 높았는지 강의실이 아니라 대강당을 가득 채운 채 진행되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난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로베스피에르라는 두 사람의 이름뿐이다. 헐~. 대학교에서 들은 수업 가운데 최악이었다.
 
베르사유의 세 번째 연관어는 조약이다. 베르사유 조약. 그런데 이 조약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서명이 이루어졌을 뿐, 프랑스 혁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석 달쯤 지난 후인 1919년 6월 28일 11시 11분 독일제국과 연합군 사이에 맺은 평화조약이다.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을 제재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국제질서를 담았다. 조약은 44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국제연맹(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창립된 국제연합(UN)의 전신)에 관한 것이었고 열세 번째 부분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관련 있다.
 
베르사유 조약의 제13편 2관 427조는 ‘동일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 남녀에게 동일한 금액의 보상을 지급하는 원칙’을 제기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고용 및 직업에서의 차별 철폐’는 ILO 회원국 모두의 의무로 규정하는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따르면 남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종, 성별, 종교와 국적에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하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ILO가 창립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그토록 강조된 이유는 무엇일까? ILO의 헌장 전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ILO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는 사회 정의에 의해서만 초래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야말로 세계평화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ILO 헌장은 나중에 동물행동학자들에 의해 증명된다. 연구진은 꼬리감기원숭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 상으로 오이를 줬다. 원숭이들은 고맙게 받아먹었다. 연구진은 이제 똑 같은 임무를 수행한 두 원숭이에게 다른 보상을 했다. 한 놈에게는 오이를 주고 다른 놈에게는 포도를 준 것. 그러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오이를 집어던지면서 강력하게 항의했다. 침팬지 실험에서는 바나나를 받은 침팬지가 바나나를 받지 못한 침팬지를 위한 연대 투쟁을 벌였다. 동료가 바나나를 받을 때까지 자기 몫을 거부한 것이다. 동물들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투쟁하고 연대한다. 그게 평화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창한 ILO은 196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믿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도 ILO 회원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89개 ILO 협약 가운데 불과 29개만 비준한 무늬만 회원국이다. 우리는 원숭이처럼 투쟁하고 침팬지처럼 연대해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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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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