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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세기의 재판' 장외여론전…반삼성도 친박도 판결에 분통
반삼성·시민단체 "이재용 범죄에 비해 형량이 상당히 낮다"
친박·보수단체 "이재용 무죄 통해 박근혜 석방하고 명예회복해야"
2017-08-25 18:37:00 2017-08-25 18:37: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세기의 재판'이 낳은 장외여론전은 탄핵정국 당시 국론 분열의 데자뷔였다.
 
25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법원으로 모여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시민들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집결했다. '이재용 구속'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재용 무죄'를 외치는 사람들로 편이 갈렸다. 중앙지법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보수단체 소속의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이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무죄를 외쳤다. 한 참가자는 "정권다툼의 음모를 감추고 결백한 이재용 부회장에 수갑을 채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는 이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다. 사진/뉴스토마토
 
반대편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노동당 등이 이 부회장의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라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그동안 조합원 2명이 '노조를 인정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죄가 선고된다면 하늘에 있는 우리 동지들이 뿌듯해 할 것이고, 무죄가 선고된다면 노조와 국민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열변했다. 
 
공판이 열리는 중앙지법 서관 417호 법정 근처에는 방청객으로 뽑힌 시민들과 국내외 기자들, 삼성그룹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지난 22일 있었던 이날 공판 방청객 응모에서 1번으로 응모했고 당첨까지 된 김씨는 공판 2시간여 전에 도착, 이재용 구속 주장에 편들었다. 그는 "나는 이재용을 용서할 마음도 있고 그가 진정으로 사과한다면 누구보다 그의 사면복권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하지만 그가 사과하는 방법은 징역을 받고 감옥에서 속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직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시민들과 기자들의 동태를 살폈다. 한 관계자는 "법원이 현명하고 법리적으로 판단해주길 바랄 뿐이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하겠냐"며 "입장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또 다른 오해를 살까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는 이 부회장의 유죄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피켓시위를 벌였다. 사진/뉴스토마토
 
오후 2시30분, 공판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TV를 보면서 방송사 속보 자막에 눈을 떼지 못했다. 공판 초반 '이재용, 박 대통령 독대 때 명시적 청탁을 했다고 볼 수 없어', '이재용·미래전략실, 묵시적·간접 청탁도 인정할 수 없어' 등의 자막이 뜨자 시민들은 "무죄가 아니냐"며 웅성거렸다. 공판 1시간여가 흐른 3시27분, '삼성 이재용, 1심에서 징역 5년'이라는 속보에 시민들은 저마다 표정이 바꼈다. 이 부회장의 유죄가 인정됐지만, 형량은 애초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보다 크게 줄었다. 
 
'이재용 구속'을 주장한 사람들은 형량이 줄어서, '이재용 무죄'를 외친 사람들은 유죄가 인정된 부분에 불만을 토했다. 급기야 이들은 법정을 나오며 충돌, 법정 경호요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한쪽에선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벌어졌다. 이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한 방청객 윤모씨는 "나라가 공산당도 아니고"라며 분개했다. 홍모씨는 "삼성은 대한민국을 망친 주범인데 법원이 재벌 봐주기를 했다"며 "결국 2·3심까지 가면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갈 것 같다"고 했다.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 앞에서는 공판에 참석하려는 방청객과 국내외 기자들, 삼성그룹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태극기를 흔들며 보수단체 집회를 주관한 사회자는 "2·3심에서 무죄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이재용을 위한 기도'를 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부회장은 반드시 무죄를 받는다"라며 "이 부회장 무죄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시키고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라두식 지회장은 "이 부회장이 유죄로 인정된 건 다행이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서는 형량이 상당히 낮다"며 "법원이 삼성의 눈치를 본 게 아닌가" 하고 비판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징역 5년은 말도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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