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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계란파동, 이낙연과 류영진으로 매긴 대차대조표
2017-08-28 06:00:00 2017-08-28 06:00:00
취임 첫날인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1호 인사’는 이낙연 국무총리,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괜찮다” “신선하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고 첫 단추를 잘 꿴 덕인지 이후 이런 저런 잡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한 인상은 아직 괜찮은 편이다.
 
국정, 안보,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세 사람의 업무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야당에서도 안 좋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낙연 총리의 경우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대선 캠프 총괄책임자 다운 장악력을 청와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임종석 비서실장이나 공채출신으로 국정원 차장까지 올라갔었던 이력의 소유자인 서훈 원장과 달리 이 총리는 좀 어려움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총리 비서실장으로는 일면식도 없어 보이는 배재정 전 의원이 임명됐다. 배 실장은 부산 출신으로 문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던 인물이었다. 총리 뒷통수가 따끔따끔함직도 했다. 공보실장, 민정실장 등 총리실의 정무직 핵심포스트도 막상 이 총리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대선 캠프 출신으로 채워졌다.
 
내각을 비롯한 인사도, 잘되는 곳은 잘 되는대로 잘 안 되는 곳은 잘 안 되는대로 청와대와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 총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하늘을 찌르는 대통령의 지지율과 존재감 앞에서 총리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닌가 싶었다. 대독 총리나 행사참여 총리로서의 위상조차 흔들리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경찰을 휘어잡고 있는 김부겸, 원전 문제에선 단호한 김영춘, 부동산 대책의 선봉에 선 김현미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국민들의 불안감과 원성은 높아졌고 새 정부의 일하는 실력도 말하는 실력에 비해선 그냥 그런가 싶었다. 신임 식약처장이라는 사람은 실력이 없으면 입이라도 무거울 것이지, 일도 못하는 주제에 언행은 딱 밉상감. 게다가 대통령 측근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부산 선대위에서 활동한 개업 약사 출신이란다. 점입가경으로 가는 흐름이다.
 
그런데 ‘1호 인사’ 이낙연 총리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함평, 영광, 장성, 담양 등 서부전남 4개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을 지내며 AI(조류인플루엔자) 등을 수 차례 겪었고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위원장 경력에 농도 전남의 도백을 올초까지 지냈던 이낙연에게 계란파동은 기실 전공과목이나 다름없었다.
 
이낙연은 상황을 장악하는 동시에 우왕좌왕하는 류영진 식약처장을 매섭게 질타했다. 난생처음 큰 일을 겪어 아무 정신도 없을 류영진 입장에선 너그럽게 품어주지 않는 이낙연이 섭섭했지 모른다. 하지만 ‘늙은 기자’ 출신 이낙연에게 먼저 매를 맞지 않았으면 류영진은, 아니 문재인정부 전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매서운 매를 맞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류영진 식약처장이 오래 자리를 지키긴 어려울 것 같다. 장차관급 낙마자들 리스트에 류영진이 이름을 보태면 “유독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만 줄줄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 안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이번 일은 문재인 대통령에겐 적시의 예방주사일 수 있다. 그리고 처방전의 가장 큰 항목은 ‘이낙연 역할 확대’다.
 
대통령은 외교안보-적폐청산-경제 등 굵직한 사안에 집중하고 구체적 행정과 정부의 통할은 과감히 총리에게 맡기는 게 낫다. 능력이 문제될 일도 없고 선거나 차기와 관련된 정무적 부담이 생길 것도 없다. 문 대통령의 몸도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권력은, 나눌수록 책임은 분산되고 전체의 크기는 더 커진다.
 
이렇게 되면, 계란파동을 통해서라도 남는 게 있는 것 아니겠나.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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