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신의성실 원칙의 세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신의칙 위반 요건이 모호해 경영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경영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의칙이 핵심 쟁점인 이 소송에서 전원합의체가 신의칙 세부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일 경영계에 따르면 전원합의체가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의 선고를 서둘러 내려 신의칙 세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영운수 사건은 2015년 10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현재까지 선고가 나지 않았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갑을오토텍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4개월 만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시영운수 사건은 최종 선고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되고 있다.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체불임금 지급의 예외 단서인 신의칙을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신의칙이 핵심쟁점인 사건을 다룬다. 2013년 인천 지역의 시내버스 회사인 시영운수 노동자 23명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합산해 미지급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시영운수는 연 600%의 정기상여금을 6차례에 걸쳐 지급한다. 1·2심 재판부는 시영운수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판단기준인 고정성·일률성·정기성을 갖춘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시영운수가 체불임금을 지급할 경우 경영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신의칙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체불임금을 지급할 경우 회사는 7억8000만원의 재정적 부담을 지는데, 시영운수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시영운수의 자본금이 2억5000만원인 점과 2011년과 2012년 당기순이익이 각각 9400만원, 5100만원 수준인 점을 근거로 들었다. 노동자들은 2015년 대법원에 상고, 전원합의체로 이관됐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 때 구성된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시영운수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의 판결로 신의칙 세부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은 신의칙 적용 요건이 모호해 통상임금 소송 하급심 판례에 일관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의칙 적용 요건은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묵시적이거나 명백하게 합의한 경우에 해당된다. 노동자(노조)의 체불임금 청구가 노사 합의 수준을 지나치게 초과할 경우에도 적용 대상이다. 기업 운영을 어렵게 할 정도로 사업주가 재정적 부담을 질 경우에도 신의칙이 적용된다. 세가지 조건이 모두 인정될 경우 재판부는 노조의 체불임금 청구가 신의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기각한다.
법조계에서는 신의칙이 도입된 지 4년여 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신의칙의 대폭 수정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전원합의체가 시영운수 선고를 통해 세부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지난달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 1심 선고 직후 정부와 정치권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지난 2월과 지난해 5월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통상임금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상여금과 관련된 논란은 법원에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노동계와 경영계의 중론이다. 정기상여금 지급 요건은 사업장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두달 동안 15일 미만 근무한 노동자는 상여금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거나 일정 기간을 근무한 직원에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인지 신의칙을 위반했는지는 법원에서 다툴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31일 "대법원이 신의칙에 대한 예측 가능한 합리적 판단을 신속히 제시해 현장의 혼란을 줄여달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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