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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여론의 몫, 정치와 행정의 몫
2017-09-11 06:00:00 2017-09-11 06:00:00
사드와 북한 발 안보 위기가 가장 큰 이슈지만 최근엔 다른 두 사안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이다.
 
청소년, 폭력, 장애, 소년범, 부동산, 집단 이기주의 등 민감한 키워드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슈 들이고 여론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당사자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고 온라인 서명, 청와대 청원 심지어 신상털기까지 진행되고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분노의 대상이 되는 쪽들이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일은 더 커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화를 낼 만 한 일에 화를 내야 한다. 화 낼 일에도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회는 비정상이다. 어쩌면 이런 폭발적 감응력이 그나마 우리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일은 먼저 네티즌들이 ‘심판’하고 신상을 털어 ‘처벌’하고 정치인들이 움직이게 ‘독려’한다.
 
불의에 공분하고 행동에 참여해 세상을 바로잡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정화되는 느낌도 받는다. 일상으로 복귀했다가 잘못된 일이 또 발생하면 포털 사이트나 SNS페이지에서 다시 뭉친다. 그런데 자주 뭉쳐야 하는 것이, 제도나 구조 혹은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그대로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이런 사안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학교 혹은 지역, 혹은 우리 사회 전체, 불안감과 ‘황금만능주의’ 등 세태가 근본 원인인 경우가 많다. 내가 비판하는 대상 속에서 내 모습이 보이니 더 화가 나기도 한다. 비난을 받는 당사자들 잘못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항상 나오는 게 그런 이유고,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화내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게 같은 이유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행정 기관은 달라야 한다. 정치인이나 교육청이 우리의 마음을 바르게 만들고 모두가 어우러져 양보하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능력은 없겠지만,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책임은 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라는 말이 유행한지도 한참 됐다. 그런데 갈등 조정 수준이란 게 당사자들이 직접 대면해서 얼굴 붉히는 것, 여론의 심판대에 사안을 올려버리는 것이라면 참으로 난망하다.
 
청소년에 대한 엄벌주의가 답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여론의 압박은 반대 진영의 고립감과 결속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풀뿌리’ 정치인 입장에선 사회 여론보다 지역 여론이 우선일 것이다. 도심 상업지구나 대학가, 관광 명소 같이 열린 공간이면 ‘보이콧’ 압박이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지만 닫힌 공간의 성격이 강한 주거지역은 다르다.
 
‘상대적 박탈감’ 주장은 어떤가? “차례대로 해야지 강서구에만 두 번째를 짓나? 옆 양천구보다 만만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양천엔 땅이 없다”는 대답은 적절한 것인가?
 
특수학교 부지에 원래 있던 초등학교는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고 말라가다가 몇 년 전에 결국 인근 신도시로 이전했다. 원래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셈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러는 거다. 이번엔 못 참겠다”고 분개하는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아파트값 올리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응수하는 게 적절한가?
 
특수학교는 지어져야 한다, 강서구 아이들도 관내 기존 학교가 다 수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뒤늦게, 가능성도 없는 국립 한방병원 운운 하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무책임한 정치인은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애아 학부모들이 반대 주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정의로운’ 네티즌들은 그 반대주민들을 질타하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이번엔 해결된다 한들 금방 또 터질거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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