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직접 민주주의의 힘?
2017-09-25 06:00:00 2017-09-25 06:00:00
9월 11일 김이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투표는 부결됐고 그 열흘 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가결됐다.
.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일단 대차대조표를 따져보자. 후보자 두 사람에 대해서 짚어 보자면 둘 다 개인적 흠결은 별로 없었다. 보수 야당이 진보성향과 이른바 코드 인사를 문제 삼은 것도 공통점이었다.
 
이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의원들의 표심을 바꾼 것일까? ‘우리 이니 하고 싶은데로 해’로 표상되는 여권 지지자들의 직접 행동이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일까?
 
글쎄...그 내용과 의도가 천양지차일지 모르겠지만 유권자들의 ‘직접행동’은 오히려 반대쪽이 더 거셌다. 김이수, 김명수 두 사람을 동성애 찬성파로(동성애가 찬반의 영역에 속하는 지 알 수 없지만) 몰아붙이는 문자, SNS가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에게 쏟아졌다.
 
보수 야당은 두 사람에 대한 반대 이유로 동성애 문제를 포함시켰다. 여당 지지자들에게서 출발한 문자 폭탄 시비 때는 직접민주주의의 기제로 상찬하던 일부 여당 의원들도 혀를 내두르며 문자를 보낸 전화 번호 공개를 검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명수 후보자 인준안이 통과된 직후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며칠 동안 문자세례를 많이 받았다”면서 “그러나 이미 찬성 입장을 밝혔는데도 모욕을 주면서 찬성하라고 문자를 날리는 분, 또 무조건 낙선을 위협하며 반대하라는 문자를 날리는 분...이런 경우는 며칠 후부터는 스팸메시지로 처리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의원은 점잖게 말했지만, 한 수도권 여당 의원은 “막무가내 문자가 쏟아진다. 김이수 후보자 부결 때는 ‘감사하다. 고맙다’는 문자가 쏟아져서 어이없었고 김명수 후보자도 부결시키라는 문자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역시 수도권의 야당 의원은 “우리도 문자 많이 받았다. 반대의 큰 동력이 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걱정이 많이 된다”고 토로했다.
 
아마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나타날 것이다.
 
첫째, 보수 진영 전체가 정당하고 적절한 갈등의 전선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주류의 자리를 상실했다는 열패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셋째,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는 보수 정치세력이 ‘이거라도 어디냐’라며 끌려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가 목소리 크기, 인터넷에서 져서 이렇게 됐다”는 전도된 인식이 강경 보수 진영에서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고 결과물도 눈에 보이는 ‘성공의 경험’을 맛봤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의 최다 참여 베스트 5는 다음과 같다. 1. 청소년보호법을 폐지 요청 2. 여성도 군대에 보내라는 요청 3. 소년법 폐지 요청 4. 사립유치원의 숙원 사항 5. 한기총 등 주류 기독교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신흥 교단 신천지 대표의 대통령 면담 요청
 
이제 온라인 직접행동 혹은 ‘직접 민주주의’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 절대 아니다. 사실 전에도 그랬다. 참여정부 당시 4대 개혁 반대 집회, 어르신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나오던 그 때도 뜨거웠다. 동원만으로 조직된 열기가 아니었다. 국정원이 그 때도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돈을 대준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힘이 무엇이었겠나? 지금도 그를 묻지마 지지하고 있는 동력이 무엇이었겠나? 주류 언론의 지원? 군산복합체나 월스트리트의 기득권 연합?
 
우리 편은 직접민주주의의 주역들이고 저쪽 편은 막무가내 패거리들이고 보는 인식은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쪽 스피커의 출력을 더 키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