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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벤처창업의 새로운 차원, 사내벤처
2017-09-29 08:00:00 2017-09-29 10:51:17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법 체계와 지원 제도가 만들어졌다. 벤처라는 말조차도 생소하던 그 시절에 정부는 코스닥 시장도 만들고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터넷 닷컴의 부상과 함께 벤처에 뛰어드는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기업들 또한 사내벤처 제도를 도입하고 벤처투자도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벤처창업은 크게 확산돼 다양한 스펙트럼의 벤처를 갖게 됐으나 벤처창업은 여전히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왜 우리나라 대기업은 벤처창업 분야에서 멀어지게 됐을까?
 
벤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창업시점이나 규모보다 기업의 혁신성이 중요하다. 창업한지 수십년이 된 애플, 구글, 아마존은 여전히 벤처기업으로 불린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벤처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계열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닷컴 열풍 시절에는 대기업들이 사내벤처를 적극 지원했으나 현재 상황은 원하는 인재를 언제든지 뽑을 수 있어 회사로서는 사내벤처에 큰 지원을 할 유인이 줄어들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제에 혁신을 불어넣자는 관점에서 사내벤처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창업자 입장에서 사내벤처를 통한 창업은 기업 내의 고용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업가로서 창업할 수 있으며 초기 투자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내벤처를 통해 우수 인재를 회사 내에 보유하면서 신규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신성장 사업을 확보할 수 있다. 흔히 성공적인 기업들이 ‘혁신가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에 빠져 혁신을 중단하는데, 사내벤처창업은 이를 막는 좋은 수단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코닥이 기존 사업이 필름 판매에 매달리다 디지털 카메라의 성장과 함께 망한 사례를 보면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내벤처를 진행할 때 중요한 이슈는 어떤 사업을 사내 벤처화할 것인지와 사내 벤처에서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도전적 인재에게 어떻게 보상하느냐이다. 우선, 신사업 발굴을 위해서는 사내 프로세스 내에서 사업을 설계할지 아니면 외부에 신사업을 독립적으로 추진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한 임직원이나 초기 팀에 합류한 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할지 결정해야 한다. 또한 소사장제로 독립적 경영을 할지, 기존 회사의 의사결정체계를 따를지 정해야 한다. 여기서는 기업이 혁신에 대해 얼마나 받아들일지, 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창조경제’ 시절 기업들은 정부에게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사내벤처 제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실적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보통 저성장 시대의 신규 사업은 새로운 대형 아이템, 잘 준비된 팀, 일정 규모의 투자가 모두 완비된 형태로 시작되기 보다는 불완전한 아이템을 느슨하게 연결된 팀이 자발적으로 시범적인 수준에서 투자를 해보면서 테스트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형태로 진행된다. 사내벤처가 활성화가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의욕을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사내벤처 지원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대기업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오랜 시간 근무하지 않도록 하며 야간 및 주말에 동호회 형태의 창업 모임(Moonlight Workers)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혁신적인 업무 공간으로 대학 및 연구소와의 협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사내벤처에 대한 모기업의 콘트롤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약 3 ~ 5년 내에 분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재벌 대기업들은 신규 벤처에 대해 재벌 소유주의 지분 취득 방식보다는 벤처캐피탈 내지 기업 재무투자 형태로 투자를 하고 그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스타트업 중심의 정부 지원 정책 외에도 대기업이 강점을 갖고 있는 전자·제조 분야의 벤처를 육성하는 정부정책 밸런스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지금, 기존 제조업과 정보통신을 융합해 첨단제조업으로 혁신적인 사업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사내벤처를 부흥시키는 정책이 절실하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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