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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 편편)‘공익’의 탈을 쓴 ‘사익’재단 아닐까
2017-11-08 06:00:00 2017-11-08 09:09:24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의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일 4대그룹 고위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한 것이다. 재벌의 공익재단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설립 취지에 어울리게 활동하는지를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이 이런 방침을 왜 세웠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현재 여러 가지 명목의 공익재단을 거느리고 있다. 문화 복지 장학사업 등 목적도 다양하다. 이들 공익재단은 일단 명칭만 보면 공익사업을 위한 기구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애초에 내세웠던 사업에는 그다지 힘쓰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 가운데 공익재단에 출연한 26개 그룹 소속 공익재단 46곳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총수입 6800억원 가운데 장학금, 연구지원, 학술, 자선 등 목적 사업에 사용한 금액은 3202억원으로, 전체의 47.1%에 그쳤다. 총수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특히 GS남촌재단(13.0%)과 삼성문화재단(13.7%)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최운열(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경우 최근 3년간 총수입이 4조4463억원에 달했지만, 공익사업비 지출은 고작 300억원(0.69%)에 불과했다. 애초 내걸었던 목적사업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들 재단은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 실태는 재벌닷컴이 조사한 바 있다. 조사결과를 보변 삼성, 현대중공업, 롯데, 금호아시아나 등 20대 재벌그룹의 40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 주식 규모는 총 6조7000억원에 달한다. 롯데장학재단은 상장사인 롯데제과(8.69%)와 롯데칠성(6.28%)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비상장사 롯데역사(5.33%)와 대홍기획(21.0%) 지분도 소유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케이알 등 4개 비상장사 지분을 100%씩 보유중이고 금호홀딩스 지분도 6.75% 갖고 있다. 
 
삼성그룹의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그룹 출자구도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지분 4.68%와 2.18%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공익재단에 출연된 재원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가 원칙적으로 면제된다. 세금 걱정 없이 공익사업에 쓰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총수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 유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이를테면 삼성생명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문화재단의 경우를 보자.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삼성문화재단의 지분만큼 삼성생명에 대한 지분이 늘어나는 셈이다. 훗날 삼성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할 때 상속세를 낼 필요도 없다.
 
더욱이 재벌은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여유자금’을 필요할 때 요긴하게 이용한다.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난해 2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를 사들였다.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맡고 있다. 그러니 이 부회장로서는 자기돈 들이지 않고 지배구조를 다지는 데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셈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금호기업을 통해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되찾을 때에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 및 그 자회사를 통해 650억원을 조달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런 거래가 재단의 본래 사업목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렇듯 재벌의 공익재단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력을 지키는데 믿을만한 병풍 노릇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소위 목적사업이라는 것도 사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분식의 성격이 짙다. 공익재단인지 사익재단인지 불투명하다. ‘공익’의 탈을 쓴 ‘사익’재단이라고 해야 정확할까? 반면 지금까지 이들 재단에 대한 감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허점이야 물론 재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마치고 의결권 제한 등 제도 개선안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에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세금도 내지 않고 경영권 승계 도구로 활용되는 악습은 근절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등 관련법규를 제대로 지켰는지도 함께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재단의 ‘명’과 ‘실’을 일치시키고 공익재단인지 사익재단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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