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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지방정부의 CSR이 진화한다
16일 지속가능경영재단 주최 ‘CSR 활성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 포럼’ 열려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 CSR 국가계획 수립해야
2017-11-20 08:00:10 2017-11-20 08:00:10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지방분권화는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이다. 지금은 ‘적폐청산’이란 ‘뜨거운’ 의제가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책임과 분권화란 ‘차가운’ 의제가 전면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차가운 의제’에 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 3층 대연회실에서는 지방분권화와 CSR을 주제로 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지속가능경영재단이 이날 주최한 ‘제3회 2017 CSR 활성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 포럼’의 주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방정부의 길을 묻다'였다.
 
공헌에서 책임으로 진화한 경기도의 CSR
이날 포럼에서는 현존 지방정부 조례 중 CSR 개념을 가장 모범적으로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은 경기도의 ‘CSR 조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의회를 통과한 이 조례의 정식 명칭은 ‘경기도 공공기관 및 중소기업의 CSR 활성화 지원 조례’로, 사회공헌에 머물렀던 기존 CSR의 개념을 책임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그동안 지방정부가 사회적 가치를 사회적경제를 중심으로 조명했기에 CSR을 전면에 내세운 경기도 조례는 지방정부의 사회적 가치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전환점이다.
 
비슷한 경향의 조례로는 앞서 부산시가 2008년에 제정한 사회공헌 조례가 있고, 이어 서울시·제주특별자치도·경기도 등에서 만든 '지방정부의 공공조달에 사회적 가치 반영' 조례들이 있다.
그러나 부산시 조례는 말 그대로 ‘사회공헌’에만 국한되었고, 공공조달 관련 조례에서는 CSR을 명시하고 있으나 사회적경제에 더 초점을 맞췄고, 조달에서 CSR기업을 우대한다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CSR 측정방법이 빠져있어 현실적으로 CSR기업을 우대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서울시 등 3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기존 공공조달 조례가 내용상 사회적기업 제품 우선 구매 조례나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올해 들어 시행된 경기도의 CSR조례는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기업을 공공조달에서 먼저 고려할 것을 명시할 뿐만 아니라, 평가·지원 등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고 있어 진일보한 조례라고 할 수 있다. 환경, 고용, 인권, 공정거래, 사회통합, 지역사회 기여 등 CSR을 실현할 수 있도록 경기도 소재 기업을 지원하는 지원 계획이 포함됐다. 경기도 조례는 공공조달 물품·공사·용역 구매 및 계약 등에 있어 경기도의 종합지표를 개발해 CSR 기업들을 우대하도록 했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이다. 이 조례는 기업 외에도 모든 공공기관이 사회적 성과를 평가받도록 명시했다.
 
이날 행사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방정부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발표한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경기도의 조례안은 다른 시도의 조례와 비교할 때 사회책임의 이해가 진일보하였고, 사회적경제와 CSR을 구분하여 이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조례가 향후 얼마나 힘 있게 운영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박주원 CSR서울이니셔티브 운영위원장은 “중앙정부의 법률에 비해 지방정부의 조례는 절차가 간단해 신속하게 제정되는 경향이 있어 수많은 조례가 제정되었다가 폐지되고, 사문화하기도 한다”며 “조례를 만든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CSR이 경기도에서 뿌리 내리려면 현실적이고 신뢰성 있는 평가정책과 중소기업까지 포용할 수 있는 세제 혜택 같은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공공기관에서부터 시작되는 사회적 책임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에서 동반성장을 촉진하는 기조 중 하나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것에서 이 정부의 의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7월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방향’에서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시 고용·창출·윤리경영 등 사회적 가치 항목의 반영을 강화하고 ‘지방공기업 사회적 책임 경영평가지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조달 입찰의 참가자격을 심사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소의 반영 비중을 높이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사회적 책임 강화와 함께 문재인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방분권화 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행정안전부의 ‘자치분권 로드맵’에는 지방세 제도를 개편해 지역 간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자치단체 자치역량을 높여 네트워크형 지방행정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분권화로 앞으로 지방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CSR에서 지방정부의 역할 또한 불가피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EU의 사례를 본 CSR의 실현방안
외국에서는 CSR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을까. 유럽연합(EU)에서는 CSR이 기업의 경쟁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쳐 국가 경제 및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주목한다. 특히 EU 의회는 EU 차원의 CSR 전략을 발표하면서 회원국에 CSR 국가전략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2014년도 ‘EU 집행위원회 CSR 국가전략 개요서’에 따르면 독일과 영국, 덴마크 등은 각국의 특성을 반영한 국가 차원의 CSR 전략을 선도적으로 수립했고,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모든 EU 회원국은 현재 CSR 국가전략을 수립했거나 수립 중이다.
 
CSR 촉진을 위한 EU의 주요 의제를 살펴보면 유럽 각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 EU는 ISO26000을 비롯하여, OECD 등 국제적인 주요 이니셔티브 원칙을 최대한 수용해서 공공조달 입찰에 기업의 사회 및 환경 성과를 반영케 했다. 또한 CSR에 대한 시장의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펀드 및 투자기관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등 사회책임투자(SRI) 요소 고려 여부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CSR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강제하였다.
 
프란츠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2017 CSR 유럽 백서’를 통해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의 메시지가 각 국가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국가들은 새롭게 연결된 세계화한 세상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SDGs가 성공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EU의 사회보고 정책 역시 눈길을 끈다. 2014년 11월 유럽의회에서 통과된 500인 이상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 법안은 기업 공시 관행에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기업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ESG를 뼈대로 한 비재무 및 다양성에 관한 정보를 공시할 것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비재무 정보란 전통적인 재무정보 중심의 보고(financial reporting)에서 다루지 않는 환경, 사회, 인권, 반부패 등 장기적 가치창출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지칭한다. 다양성은 기업 노동자들의 나이, 성, 지역, 교육 및 직업적 배경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안치용 소장은 “유럽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뚫고 통과된 새로운 EU의 사회보고 정책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유럽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도 곧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CSR 청사진이 필요하다
EU와 달리 한국에는 국가 차원의 CSR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는 일종의 미봉책이라 할 ‘사회적 책임경영 중소기업 육성 기본계획’이 그나마 국가CSR 계획에 근접한 정책으로 분류될 수 있다. 기본계획은 기업들이 CSR을 경영에 도입하도록 촉진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에 친화적인 CSR 인프라를 조성할 것을 적시했다. 또한 대기업 중심인 현 사회적 책임경영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혁신 마일리지를 운용하고, SRI 지수와 모태펀드 출자를 통한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는 등 CSR 경영에 대한 직·간접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구체적인 CSR 국가전략 조성에 관한 첫걸음은 지난 7월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인천 남구갑)이 대표 발의한 ‘산업발전법 개정안’에서 목격된다. 현 산업발전법은 제18조와 제19조에서 정부가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2007년에 신설된 이 조항에 종합시책의 수립 주기와 내용이 명시되지 않아 지금까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이러한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번 개정안은 수립 주기를 5년으로 명확하게 밝혔고,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지속가능경영재단 황선희 이사장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국가 차원의 CSR 로드맵이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떤 정책적 기조와 방향을 가졌는지 신속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황 이사장은 “CSR에 관한 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분수효과 낙수효과를 혼용하여 개별 지방여건에 맞는 CSR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 3층 대연회실에서 지속가능경영재단 주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방정부의 길을 묻다' 란 주제로 열린 '제3회 2017 CSR 활성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KSRN
이상엽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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