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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노동자 추천 이사제, 아직 갈 길 멀지만 의미 있는 출발”
(인터뷰)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
2017-12-04 08:00:00 2017-12-04 08:00:00
국민연금이 지난 11월 20일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노동자 추천 사회이사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후 ‘부결’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노동이사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뜨거운 찬반논쟁과 관련하여, 노동문제 전문가인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사진)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서울시에서도 산하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굉장히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2016년에 서울시는 100명 이상의 근로자가 있는 산하 출연기관에 의무적으로 노동이사를 한 명이상 두도록 조례를 통과시키고 이에 따라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사례를 밑그림 삼아서 내년부터 정부 산하 모든 공공기관에 서울시와 같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내용이다. 노동자 경영 참가의 첫 발을 떼는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 최근 KB국민은행 사외이사 선임과정에서 노동자가 추천한 이사 선임안이 부결됐다.
▲노동자 대표가 직접 이사회에 참가하는 노동이사제는 물론 노동자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가하는 것마저 사용자 측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노동자 추천 이사제는 전체 이사 중 단 한 명의 이사를 노동자가 추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외이사의 전체, 혹은 과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우는 것도 아닌데 경영상의 효율성이 저해될 것이라 주장은 지나치다. 노동자 경영 참가가 가장 활발하다고 평가받는 독일에서는 노동자 추전 이사가 아닌 노동자 대표가 직접 감사회에 참여하여 절반을 구성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상징적 수준인데, 경영권 침해를 근거로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 선임안은 부결됐지만 국민연금이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의미있는 변화라고 본다. 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사회책임투자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기관투자자로서 투자하는 기업이 올바르게 준법 경영을 하는지, 사회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감시할 의무를 진다. 기업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도록 추동하고 견인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민연금이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제에 찬성을 했다고 분석한다.
 
- 사외이사제도의 취지와 상충하는 측면은 없는가.
▲사외이사제도에 따르면 모든 공기업과 상장 기업이 사외이사를 두도록 되어 있다. 회사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회사가 불법 경영 같은 잘못된 경영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함이다. 이사회의 결정을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사외이사의 상당수가 정실 논란을 일으켰다. 사외이사로 들어가 이사회에서 안건에 대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 사외이사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 추천이사가 도입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물론 노동자 추천 이사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시민사회단체 추천 이사라든지, 이런 다른 이해 관계자들도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단체 교섭 등 기존에 노동자의 권리와 충돌하진 않는가.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는 반드시 그 회사 노동자가 아니어도 된다. 만약 회사 노동자가 이사로 들어간 경우에는 제도적으로 협의해 나갈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서울시 사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직책이나 직급에 있는 근로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돼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이익, 권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단체인데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합원이 되는 것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이사가 물론 이사회에 가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용자의 이익,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현행법과 모순 내지는 충돌이 생긴다고 보고 서울시는 노동이사가 되면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도록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조금 더 유연하게 합의할 부분은 있다. 독일은 노동이사로 선임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박탈거나 조합을 탈퇴시키지 않는다. 노조에서 탈퇴하지 않더라도 이해가 대립·충돌하지 않게 운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꾸준한 논의와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 노동자 추천 이사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노동자 추천 이사제가 아닌 노동이사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힘을 합쳐서 같이 회사 발전이나 사회 발전, 국가 발전,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기 위해선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협력 등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현재도 기업,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도 참여시키려고 하는 예를 들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노동이사제를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노사 간의 화합과 협력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반대 측 우려를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독일의 감사 이사회는 노동자와 사용자측 이사가 동수로 구성돼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어떻게 정착될 수 있을까.
▲동수 구성은 아직은 무리라고 본다. 지금은 도입단계다.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한꺼번에,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를 시행해나가면서 필요하면 동수를 할 수도 있고, 3분의 1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정을 지켜보며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이사회를 노동자이사와 사용자이사 동수로 구성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몇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송은하 KSR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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