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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적폐'에서 '관치'만 쏙 뺀 금융위원장
2018-01-17 08:00:00 2018-01-17 08: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15일 '금융혁신 추진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청산해야 할 금융적폐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담보 대출 위주의 영업 ▲비 올 때 우산 빼앗는 행태 ▲과도한 황제 연봉 ▲형식적인 지배 구조 ▲불완전 금융 상품 판매 ▲채용 비리 등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누구나 수긍할만 하지만 뒤이어 나온 발언은 금융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최 위원장은 "만약 금융인들 중에 금융은 언제나 옳고 어떠한 경우도 간섭 받아서는 안된다는 식의 우월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생각을 고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정권 교체를 지켜보면서 적폐 청산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만큼 금융위원장의 금융적폐 경고는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서슬퍼런 칼날로 다가왔을 것이다. 금융 적폐가 어느 회사, 누구를 겨냥하는 것인지 따져보는 눈치가 취재 통화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 였을까. 최 위원장이 지목한 적폐의 대상은 하나금융지주와 김정태 회장으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 수장들은 유난히 하나금융지주의 CEO 선출 과정을 두고 경고 목소리를 많이 냈다. 민간 금융지주사 가운데 CEO 임기 만료를 앞둔 곳이 하나금융 뿐이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 현재 진행 중인 조사를 이유로, 하나금융에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연기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관치 금융 논란으로 일파만파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그날 저녁 '금융혁신 추진 방향 발표문' 관련 보도참고자료를 내기도 했다. 최 위원장의 적폐 청산 발언은 특정회사 또는 특정사례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는 내용이다. 특정 대상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은 지난해부터 금융당국 수장들이 꾀꼬리처럼 반복해온 해명이다.
 
정권 교체 이후 금융사 지배구조를 흔드는 모습은 새롭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각종 의혹 제기와 검찰 조사가 이어지다가 결국 금융사 수장이 자리를 떠나는 패턴이 반복됐었다. 이후 낙하산이 그 자리를 채우고 금융사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표적으로 정권 교체 때마다 외풍에 흔들렸던 곳이 KB금융이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도 금융당국은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에게 무혐의로 결론이 난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 처벌을 내린다. 황 전 회장이 물러난 이후 금융당국은 회장 선임을 연기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자 금융권 4대 천왕 중 한 명인 어윤대 전 회장과 임영록 전 회장 등을 거치면서 KB금융은 업권 1위에서 만년 2위로 추락, 입지를 되찾는데 10년 가까이 걸렸다.
 
나름의 명분을 갖고 지배구조 손질에 나선 금융당국은 억울하겠지만, 최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인선을 둘러싼 마찰음을 지켜보는 금융권은 과거 관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만큼 정권 교체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온 '트라우마'가 큰 것이다. 최 위원장이 금융적폐 사례의 마지막으로, 제재와 감독권한을 남용해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반성을 담았다면 어땠겠냐는 아쉬움이 든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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