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국제 주기율표의 해
입력 : 2018-01-26 06:00:00 수정 : 2018-01-26 06:00:00
"책에 있는 것은 남의 지식이고 내 머릿속에 들어와야 진짜 내 지식이다"
 
독일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내게 무수히 강조했던 말씀이다. 우리는 이해과목과 암기과목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과목은 암기과목이라는 말이다. 이해는 중요하지만 이해를 하는 진짜 이유는 암기를 잘하기 위해서다. 생각해보면 구구단도 우선 암기해야 하는 것이고 영문법도 암기해야 하는 것이다.
 
'수헬리베붕탄질산불네나마알시인황염아칼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문이 아니다.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각기 다른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대략 이런 방식으로 주기율표의 처음 스무 개 원소의 순서를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걸 잘 외운 학생은 화학이 재밌고 그게 잘 안 되면 화학이 재미없었다. 구구단을 잘 외워야 산수가 재밌고,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고 있어야 독해 시간이 재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기율표는 화학의 처음이자 끝이다. 화학이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원소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결합과 반응으로 이루어진 학문인데, 원소들은 아무하고나 반응하고 결합하지 않는다. 그들이 결합하고 반응하는 데는 일정한 논리가 있는데, 그 논리를 마치 그림처럼 그려놓은 것이 바로 주기율표다. 주기율표는 인포그래픽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주기율표만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면 모든 화학 분야의 기초는 갖춘 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주기율표 얘기냐고 궁금하실 것이다. 올해는 국제연합(UN)이 정한 '국제 주기율표의 해'다. 유엔이 굳이 올해를 주기율표로 정한 까닭은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든 지 꼭 150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멘델레예프의 인생사는 정말 눈물겹다. 멘델레예프는 시베리아 서쪽 작은 도시에서 11, 13 또는 17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뭐가 맞는지 아무도 모른다). 멘델레예프가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시력을 잃고 교사직에서 물러나자 엄마가 유리공장을 세워 생계를 꾸렸지만,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유리공장에 불이 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막내 멘델레예프와 누나 한 명만 남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멘델레예프만은 고등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모스크바로 무작정 상경하였지만 교육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결국 멘델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교육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입학한 지 10주 만에 엄마도 세상을 떠난다. 2년 후 멘델레예프는 결핵에 걸려 수개월의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 슬픈 가정사다. 하지만 멘델레예프는 73살까지 살았다.
 
1869년 당시 서른다섯 살이던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에 관한 첫 번째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만든 사람은 멘델레예프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모든 화학자들은 원소에서 규칙성을 발견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꿈을 꾸고 있었다.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로타르 마이어도 멘델레예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멘델레예프와 마이어는 노벨상이 생기기 전에 가장 명망 높던 과학상인 데이비 메달을 공동 수상했다.
 
멘델레예프와 마이어 외에도 주기율표를 발표한 사람들은 몇 더 있지만 그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원소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는 원소로 완벽한(?)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당시 알려진 62종의 원소를 배열하면서 빈칸을 만들었다. 자신의 주기율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이어는 빈칸은 빈칸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멘델레예프는 자신은 아직 모르지만 빈칸을 채울 원소가 반드시 있으며 언젠가는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갈륨, 게르마늄, 토륨, 우라늄, 지르코늄, 헬륨, 아르곤 등 무수히 많은 원소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기율표는 멘델레예프 주기율표가 아니라 모즐리 주기율표다. 멘델레예프가 정한 원소번호는 지금 우리가 아는 원소번호와 다르다. 멘델레예프는 원소들을 원자량 순서대로 배열했지만 모즐리는 양성자 순서대로 배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기율표 하면 멘델레예프를 떠올린다. 그의 아이디어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과 함께 언젠가는 그 자리가 채워질 것이라는 직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후배 과학자들은 101번에 멘델레븀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멘델레예프를 기리고 있다.
 
현재 주기율표에는 118개의 원소가 있는데 아직 한국 과학자가 만든 원소는 없다. 국제 주기율표의 해에 주기율표를 한번 공부하는 것은 어떨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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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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