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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쌍차 김득중 지부장의 네 번째 단식
2018-03-21 08:00:00 2018-03-21 08:00:00
날은 흐렸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설치된 텐트는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 더 을씨년스러웠다. 거기에 단식 19일차를 맞는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앉아 있었다. 덥수룩한 면도, 근육이 소멸된 팔 다리, 몸이 너무 홀쭉해졌다. 그 등 뒤에는 “함께 살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장기 단식이 10년 사이에 네 번째다. 2015년에도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가 45일 만에 병원에 실려 갔다. 이번에는 “내 몸을 태워서라도 해결하고 싶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그가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까지 해결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지난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에 의해서 쫓겨난 해고자들의 복직이다.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임금도 포기하면서까지 호소했다.
 
77일간의 옥쇄파업이 경찰 특공대의 잔인한 진압으로 끝난 뒤에 해고자와 가족들이 연이어 죽어갔다. 자살이나 돌연사였다. “해고는 살인”이라던 노조의 주장이 현실화되어 갔다. 연이은 죽음에 비로소 세상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문제에 눈을 돌렸고, 사회는 연대의 기운을 형성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대한문에서 1년 넘게 노숙 농성을 했고, 평택 공장 송전탑에서 140일, 공장 굴뚝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벌였고, 마힌드라 본사가 있는 인도까지 원정투쟁도 두 번이나 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이 20일차로 접어든 날이다. 마침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그 개헌안에 노동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근로”라는 단어는 모두 “노동”으로 바꾸고, “동일가치 노동 동일수준 임금”을 명시하겠으며, 공무원의 노동3권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하겠다고 했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었으니 일단 환영할 일이다. 개헌안대로만 되면 앞으로는 노동권이 강화되어서 회사와 정부에 의한 노동권 탄압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파인텍 노동자들과 전주 택시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을 벌인지 100일도, 200일도 훨씬 넘겼고, 쌍차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이 20일이 넘어가는 상황은 외면하면서 미래의 노동권 강화만 외치는 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쌍차의 경우 이명박 정권 때 매우 종합적인 노조말살 탄압을 당했다. 경찰특공대를 동원한 잔인한 진압의 고통은 지금도 쌍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선명하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더욱이 회계조작 건에 대해서 고등법원이 이를 인정해서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결론했던 것을 대법원이 뒤집었던 일도 있었다. 거기에 경찰이 진압장비가 파손되었다고 걸었던 16억 원 손해배상 재판이 대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모두 고통인데 회사는 노조와의 약속을 번번이 어겼다.
 
2015년 말 쌍차 노사는 극적으로 합의했다.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를 모두 복직시키겠다고 했고, 희망퇴직자도 우선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130명 해고자 중에 37명만 복직되었다. 이번에도 해고자 복직 협상 중에 8명의 해고자를 복직시킨다면서 16명에게 면접을 보라고 통보했다. 해고자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간사한 수법이다. 이러니 노동자들은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문제는 대부분 사측의 노동권을 부인하는 행태와 공권력의 일방적인 사측 편들기, 정부의 부당한 개입 등으로 일어났다.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방치할 수만은 없다.
 
더 이상의 단식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외치는 정부가 이 사태를 외면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지금여기의 노동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길 바란다. 쌍차로부터 시작해 과거 잘못된 노사관계, 정부의 부당한 사측 편들기로 인해 저질러진 고통스러운 노동문제에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라는 구호가 허공 속에 나부끼는 깃발만은 아니게 되지 않겠는가.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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