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 삶은 '존재' 자체로 축제…로큰롤 라디오를 켜라!
입력 : 2018-04-12 16:03:29 수정 : 2018-04-12 16:03:2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밴드의 음악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공간에서 보면 어떨까요?”
“네. 공유하고 의견 모아볼게요~”
 
인터뷰 일주 전, 메시지가 왔다.
“광흥창 ‘CJ 아지트’에서 보면 어떨까요?”
 
CJ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CJ 아지트’는 밴드 로큰롤라디오에게 ‘집’ 같은 공간이다. 2012년 이곳의 뮤지션지원 사업 ‘튠업’에 선정된 이후 밴드는 제 집처럼 드나들며 자신들의 세월을 덕지덕지 이곳에 칠해왔다.
 
주로 지하 공연 시설을 이용하면서였지만, 다른 이유로도 수시로 흔적을 남겼다. “밴드를 위해 모든 것이 열려있는 공간이거든요. 회의를 하러도 오고, 음악 정보를 얻으러 오기도 해요. 항상 밴드들에게 열려있고 지원을 해주시거든요. 다문화 학교나 소년원에 음악레슨 활동도 알아봐주시고요. 저희한테는 정말 이름처럼 ‘아지트’이자 ‘집’ 같은 공간입니다.”
 
서울 마포구 광흥창에 있는 CJ아지트.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벚꽃이 흐트러지게 폈던 지난 10일, 그들의 ‘집’에 초대됐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그곳에 남겨진 밴드의 흔적들을 하나 둘 살폈다. 그 중 입구에 걸린 흑백 사진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슬프든, 기쁘든 입 다물고 춤이나 춰! 그게 인생이야!’ 밴드는 그 사각 프레임 안에서 대표곡 ‘셧 업 앤 댄스’(Shut up and dance)’의 LED 글자를 배경으로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 중이었다.
 
인터뷰 예정시각인 오후 3시, 네 명의 멤버(보컬·기타: 김내현, 기타: 김진규, 베이스:이민우, 드럼: 최민규)를 만날 수 있었다. 컬러풀한 안경과 모자, 셔츠와 마스크 그리고 주황색 긴 머리. 각자의 색깔이 묻어나는 개성 넘치는 패션이었다.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커피를 타고 '한 잔 하겠냐' 묻는다. 밴드와 잠깐의 여유를 누린 뒤 그들의 삶과 최근 발매한 EP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로큰롤라디오 멤버 김진규(왼쪽부터), 이민우, 김내현, 최민규.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진규)안녕하세요. 저희는 로큰롤라디오입니다. 밴드명은 제가 자주 듣던 미군 라디오에 착안해 지었어요. 당시 라디오로 저는 다양한 록이나 팝 음악을 알곤 했거든요. 그곳에서 따뜻한 전파를 타고 흐르는 음악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순간 어떤 음악을 하든 밴드만의 고유한 색깔을 내는 팀이 되자, 생각이 들어 짓게 됐어요!”
 
결성된 지 7년, 그간 무수한 일들이 있었다. 2011년 데뷔한 후로 한 해에만 100회 넘는 공연을 하며 CD 한 장 내지 않고 이름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CJ 문화재단의 ‘튠업’ 뮤지션으로 선정됐다. 밑바닥부터 쌓은 내공으로 2013년 정규 1집 ‘Shut up and dance’를 발매, 미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러시아 투어를 돌며 ‘괴물 밴드’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력만 놓고 따져 봤을 때 네 멤버 모두 성실과 근면이 짙게 배인 밴드 같아 보였다.
 
로큰롤라디오 베이스 이민우.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민우) 성실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절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로큰롤라디오로 활동하기 전에 멤버들 각자 다른 밴드 구성원으로 활동했었지만 와해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밴드라는 팀이 쉽게 깨질 수 있음을 알았고, 2~3년 동안 무대에 굶주리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절박함의 크기가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에 서는 자체 만으로도 즐거웠고요!”
 
해외 무대에서 ‘한국 밴드’로 선다는 건 그들에겐 ‘꿈’과도 같았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생각과 다른 점도 많았다.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프랑스 칸느 음반 박람회(MIDEM) 등의 쇼케이스 무대에 섰지만, ‘진출’의 개념으로 보긴 어려웠다.
 
“(내현) 낙수효과라는 말을 처음으로 경험했어요. 주로 현지의 케이팝(K-pop) 열혈 팬들이 ‘한국 팀’이라니까 관심을 갖고 보셨거든요.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선 이후 ‘진출’까지 이뤄지진 못했어요. 당시 저희가 음악 외에 영어나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체적으로 부족하기도 했거든요.”
 
“(진규)예전에는 해외에 대한 동경도 컸는데, 아무래도 장기간 체류하면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단발성으로 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분간은 한국에서 앨범 내고 공연하며 자연스럽게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로큰롤라디오 기타·보컬 김내현.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지난 달 29일 발매된 EP '무의미의 축제(La Fete de L'insignifiance)'는 그런 밴드의 사고 전환에서 나온 앨범이다. 3년 만에 발표된 앨범에서 밴드는 더 진실되고 솔직하게, 그리고 초연하게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보컬 내현은 “밴드들은 보통 초창기 주목을 받고 데뷔를 하면 ‘여기서 조금만 더’ 라는 조급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라며 “그런 생각에 매몰돼 있다 함께 음악하며 알고 지내던 형이 작고하시고, 회사와도 결별하게 되면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못보고 살아왔던 것들’, ‘못보고 지나쳐왔던 것들’을 음악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앨범 타이틀은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내현)쿤데라는 역사라는 자체가 꼭 진지하고, 경직되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그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다 누군가가 순간 흘리는 ‘농담’처럼 그것이 모여 역사가 된다고 하죠. 그 구절을 읽다 문득, 제 자신이 잔뜩 눈에 힘주며 경직된 채로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만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29일 발매된 EP '무의미의 축제(La Fete de L'insignifiance)'. 사진/로큰롤라디오
 
수록곡들은 대체로 전작보다 무거운 느낌이 있다. 내현이 국립암센터에서 경비로 일하던 2011년, 4세 어린이 환자를 지켜보며 쓴 곡 ‘One more time’부터 세월호 유족들이 바닷가에서 울부짖던 기억을 회고하며 쓴 ‘구름에 가려진 달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한 ‘어제와 다르게’ 등 신곡들의 메시지가 ‘비가(悲歌)’적 느낌을 준다. ‘슬프든, 기쁘든 입 다물고 춤이나 춰! 그게 인생이야!’라던 ‘희와 비’의 공존은 이 앨범에서 모색할 수 없는 걸까.
 
“(민우)'희망적이냐 아니냐 보다는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구나'라는 공감대로 다가갔으면 해요. 소소한 이야기지만 결국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희망을 굳이 찾으려기 보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다 함께 느끼고 공감을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내현)앨범의 타이틀에 ‘축제’란 의미가 있어서 ‘희망은 있는 거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요. 사실 앨범에서는 슬픈 상황을 인정하는 ‘존재’, 그 존재가 지닌 가치를 축제라 표현한 것이거든요. 저희도 지난 3년 간은 그러한 과정을 깨달아 온 것 같아요.”
 
발랄하게 에어기타 켜는 포즈를 취하는 로큰롤라디오.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기타와 드럼, 베이스 밴드 사운드의 기본구성에 사이키델릭한 신스를 섞는 이들의 음악은 정해진 장르는 없다. 그들과 친한 러브엑스테레오의 한 멤버가 ‘네오 사이키델릭 디스코’란 명칭으로 장르를 요약해주기도 했지만 이들은 “다른 소리를 넣거나 빼려는 자유는 항시 열려 있다”며 “록 밴드니까 하고 싶은 걸 할 거다. 소멸될 때까지는”이라며 웃었다.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클럽 공연도 연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언플러그드와 네스트나다에서 오는 22일과 28일 라이브를 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밴드의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질문에 4명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3초간 침묵했다.
 
진규부터 살짝 자신 없다는 듯 입을 먼저 뗀다. “갠지스강?” 내현이 말을 잇는다. “나는 태국! 너무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 습하고 불편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이색적인 먹거리도 많고, 싸고 칼라풀한 느낌.”
 
인터뷰 내내 굳게 침묵을 지키던 드럼 민규가 쐐기를 박는다. “툰드라의 오로라. 비행기를 타고 가서, 차로도 열 몇시간을 달려 가면 원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곳. 노출은 많이 되지 않았지만 가보면 기가 막힌 세계 유일한 성지 같은 곳?.” 모두가 웃더니 이게 제일 표현이 좋다며 동의했다.
 
로큰롤라디오.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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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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