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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레슬러’, 차라리 유해진 원맨쇼였다면 어땠을까
유해진-김민재 ‘부자 관계’ 회복 프로젝트 ‘공감’
두 사람 위해 주변인 소비, 나쁜 연출 ‘아쉬움’
2018-04-24 14:51:50 2018-04-24 14:51:5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관객들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언론의 보는 눈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슬러’는 유해진이란 배우의 장점을 꽤 그럴듯하게 활용하면서도 주변 인물들을 너무도 하찮게 써버렸다. 물론 선택과 집중이란 측면에서 연출자는 이야기의 구성을 위해 장치와 쓰임새의 무게감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레슬러’ 속 주변인 캐릭터 쓰임새는 분명 근래 보기 드물게 하찮은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다.
 
 
 
영화는 국가 대표 레슬링 선수 출신의 귀보(유해진)가 10세 연상의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뒤 아들 성웅(김민재)을 키워내는 ‘부모(아빠) 승리 스토리’다. 가족극 특유의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 그리고 유해진이란 배우가 갖고 있는 인간미, 여기에 주변인들의 치고 빠지는 적재적소의 양념이 간을 맞춘다. 유해진-김민재의 호흡 그리고 ‘부자 관계’의 화학 반응을 설명할 ‘레슬링’이란 소재도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그럼에도 보고 난 뒤 깔끔한 맛 보단 오히려 MSG의 텁텁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급기야 부자 관계의 설명도 길을 잃어 버린다. ‘멀리서 보면 괜찮은 모양새 인데, 가까이서 보면 씁쓸한 양념 맛 뿐’이다.
 
먼저 영화는 급격한 사건을 전환점으로 스토리가 발생한다. 성웅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주인집 딸 가영(이성경)은 뜻하지 않은 고백을 한다. 성웅은 가영을 짝사랑한다. 아니 성웅과 가영은 서로를 좋아해야 한다. “너의 엄마가 돼 줄께. 진짜 엄마가”라며 성웅에게 고백하는 가영. 가영은 성웅이 아닌 그의 아빠 ‘귀보’를 좋아한다. 스물 살 차이가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레슬러'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때부터 성웅의 생활은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아니 귀보와 성웅의 생활은 온통 불협화음 뿐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해 살아온 귀보. 자신을 위해서만 인생을 살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점차 귀찮아 지는 성웅. 아니 질투심이다. 성웅은 가영의 고백에 아빠 귀보를 남자로서 상대한다. 귀보는 아들의 변화에 그저 철 없는 사춘기 아들의 투정쯤으로 치부한다. 가영의 뜻하지 않은 고백 조차도 귀여운 일탈로 치부해 버릴 뿐이다.
 
물론 영화는 뻔한 결말을 내딛는다. 부자간의 화해 그리고 안정된 생활의 복귀. 가족의 소중함. 관계의 회복. 이 모든 것을 위해 주변인들은 귀보와 성웅의 이야기를 위한 부속품으로 작동을 한다. 영화 초반과 중반 이후 간간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향은 영화가 담고 있는 따뜻한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영화 '레슬러'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동성애자이면서 귀보의 가슴 속 아픔을 이해하는 승혁(김태훈), 귀보와 성웅을 친동생과 조카처럼 아끼는 주인집 부부 성수(성동일)와 미라(진경). 나사 빠진 듯한 똘끼 충만이지만 유쾌한 바이러스처럼 극 주변에서 작동하는 도나(황우슬혜) 아들의 생활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잔소리를 마다 앉는 귀보 엄마(나문희) 등. 이들은 모두 귀보와 성웅을 통해 일상의 소소함이 만들어 내는 색다른 삶의 맛을 일깨워주는 좋은 선택처럼 보인다. 충격과 임팩트가 부족한 가족 코믹 드라마 장르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화학 반응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자극하는 주요한 식재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같은 작용도 충분히 재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귀보와 성웅의 관계 회복에 집중한다. 그리고 의외의 한 꺼풀을 벗어 제 낀다. 주변 인들의 상처 회복이란 지점을 내세운다. 부자 관계 회복의 가족 드라마였는지, 스무 살 나이차 극복 러브 스토리의 환상 코미디였는지, 소시민 일상의 소소한 행복 코드인지. 갈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전개된다.
 
영화 '레슬러'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초반과 중반을 이끌어 가던 가영의 시퀀스는 소리도 없이 퇴장을 한다. 귀보 부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 오던 성수 가족의 사라짐은 기묘할 정도다. 육두문자를 날리며 현실 엄마의 고민을 쏟아내던 귀보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귀보와 유쾌한 케미를 선보이던 도나의 활용은 그나마 애교 수준이라고 봐야 할까. 귀보의 고민에 “스스로의 삶을 살라”며 멋들어진 조언을 하는 승혁의 삶은 그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위한 끼워 맞춤이었나.
 
영화는 중반 이후 급격하게 방향타를 잃는다. 아니 귀보와 성웅의 관계 회복을 위해 주변인 편집 작업을 가감 없이 진행한다. 예고도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관객에 대한 불친절은 두 번째다. 그저 온 신경은 귀보와 성웅에게만 쏠려 있다.
 
영화 '레슬러'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각자의 역할과 위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레슬러’는 가장 따뜻한 가족 코미디와 소시민의 삶을 구현하는 일상의 소소함을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관심이란 측면에선 선택과 집중에만 오롯이 힘을 쏟아 부었다. 차라리 유해진의 원맨쇼였다면 어땠을까. 어설픈 투영이 오히려 안정된 느낌의 첫 맛을 흐려버린 불편의 한 수가 됐다. 다음 달 9일 개봉.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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