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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 강화 칼 빼든 국민연금)①대한항공 공개서한…주주활동 본격화 신호탄
주총서 반대표 비중 확대…'연금사회주의' 우려 불식해야
2018-06-25 08:24:00 2018-06-25 08:24:00
[뉴스토마토 전보규·신항섭 기자] "주주권 강화를 위한 행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탄을 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공개서신을 보낸 것에 대한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해석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앞서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 이런 행보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과 맞닿아 있어 앞으로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연금이 불합리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위탁한 자금의 주인인 국민의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할 수준까지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공개서한·반대 의결권 확대…행동 나선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이달 초 대한항공 대표이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공개서한을 보내는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말 기준 대한항공의 지분 12.4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공개서한 발송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대한항공 사태에 대한 우려 표명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을 행사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이뤄졌다.
 
조인식 기금운용본부장(CIO) 직무대리 명의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국민연금은 "경영진과 관련해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는 대한항공에 대한 신뢰성과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의 입장과 입장을 뒷받침할 자료, 경영진과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이 제시한 답변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 15일 경영관리체계 개선책과 회사의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보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비공개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직 어떤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아니지만 다른 기업에게도 오너 일가나 일부 경영진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망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신호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에서도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면 올해 1분기 총 2561건의 주주총회 상정안 중 20.5%에 해당하는 524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예년에 비해 두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전까지 국민연금의 반대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주로 이사 및 감사 선임과 보수한도 승인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장기 연임에 따른 독립성 약화 우려와 참석률 미달, 과도한 겸임으로 의무수행이 어렵거나 주주권익 침해 이력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제대로 일하지 않았거나 일할 수 없는 이사와 감사 선임을 막아선 것이다.
 
독립성 확보·5%룰 등 과제는 여전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에 시동을 걸었지만 지배구조 개선 등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준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현 제도 아래서의 한계는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보낸 공개서한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연금은 공개서한에서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장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경영참여 행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영진 및 사외이사에 대한 비공개 면담 요청 외에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없었다. 요청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사 해임과 같은 구체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투자대상 회사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하고 있어 이런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꿔야 한다. 
 
경영참여를 하면 강력한 주주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5%룰'에 적용을 받는 부담이 생긴다. 5%룰은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가 경영참여를 하면 1% 이상 지분 변동시 5일 이내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다. 5%룰이 적용되면 국민연금은 투자 전략이 노출될 수 있고 이는 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단순투자의 경우에는 다음달 10일까지 보고(약식보고)하면 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연기금에 대한 5%룰 적용 완화를 검토 중이다. 구체적인 주주권 행사 지침을 공시하고 그에 따르는 경우 주식 보유 목적에 관계없이 약식보고를 허용하는 방안이다.
 
금융당국의 조치로 이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이른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는 남는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는 구조상 최상위에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정부직이 많다보니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고 이런 오해를 벗어나기 위해 의결권 전문위원회 강화나 독립된 운영조직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방향성은 바람직하지만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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