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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저출산 문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정부, 획기적 정책 마련 위해 최대치 넘어서는 투자 나서야"
"육아는 사회적권리…사회가 함께 책임지며 지원해야"
2018-06-22 06:00:00 2018-06-22 06:00:00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육아정책연구소는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국내 육아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최고의 싱크탱크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국가 위기로 떠올랐던 지난 2005년 출범해 설립 역사는 길지 않지만, 국내 보육·유아교육 등의 분야에서 깊이있는 연구와 대안 제시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한민국 사회가 초저출산의 벼랑 끝에 직면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으면서 연구소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백선희 소장은 서울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12월 육아정책연구소장으로 임명됐다. 서울시 보육정책위원회 6기 위원장과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 및 고령사회위원회 결혼출산지원분과 위원,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등을 두루 역임한 최고의 전문가다. 취임 후 지난 6개월 동안 다양한 행보를 보인 백 소장을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외교센터에서 만났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외교센터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육아정책연구소
 
취임 6개월째다. 연구소 소개와 함께 활동 내용을 듣고 싶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으로 지난 2005년 참여정부 때 출범했다. 그때 저출산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올해 출범 13년차를 맞이하는데, 지난 10년 동안 육아정책연구소가 국내 보육과 유아교육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면 향후 10년은 저출산 문제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려고 한다. 특히 육아정책의 범위를 우선 확대하려고 한다. 그동안 육아정책의 주요 대상이 영유아 보육 부분이었다면, 이를 연령도 확대하고 임산부 등으로 대상도 넓혀 연구의 범주를 확대하려고 한다.
 
육아정책을 연구하는데 있어 정책 수요자인 부모를 포함해 어린이집·유치원 종사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때문에 취임 후 바로 열린토론회를 5회나 개최해 학계, 부모·현장전문가, 정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일종의 '경청 토론회'였다. 우리는 'KAL(칼)'이라고 부르는데, K는 육아정책연구소를 뜻하는 'KICCE', A는 '적극적인'이라는 뜻의 'Active', L은 청취 또는 경청을 의미하는 'Listening'을 말한다. 즉 육아정책연구소가 적극적인 경청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다섯차례의 열린토론회를 마련했다.
 
또 비혼가족, 다문화한부모, 장애아 가족, 저소득층 가족 등 육아취약계층을 찾아가는 현장간담회도 6회나 열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현장에서 직접 듣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와 함께 육아정책 생태계 확산을 구축하기 위해 유네스코, 굿네이버스 등 아동 관련 대표적인 NGO 단체와도 협약을 체결했다.
 
이 밖에도 일반 국민들에게 어렵다고 여겨지는 정책의 성과들을 소통ㆍ공유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카드뉴스'도 만들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육아정책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아이 낳고 싶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한 지상파 방송사와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제작해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연구소가 더 바쁜 것 같다.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과 연구 등을 하는 이유는 좋은 연구가 연구로 끝나면 안되고, 좋은 정책을 통해서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성과를 어떻게 확산할 것인가, 연구를 현장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등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하면서 '육아권'이라는 것을 사회적 이슈로 키울 생각이다. 육아는 사회적인 권리다. 보통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제는 부모의 책임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같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봐야 한다. 육아권, 말 그대로 권리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그 권리를 누가 보장해줘야 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일단은 정부와 사회다. 아이 키우는 것을 부모의 사적인 책임 영역에 두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때문에 정부와 사회는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육아권'이라는 것을 매번 강조하고 있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이 지난 3월 '찾아가는 육아현장 간담회'를 열고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육아정책연구소
 
저출산 문제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 어느 정도 심각한가.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처럼 초저출산 현상이 장기화된 국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저출산 문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보통 출산율 가지고 이야기 많이 하는데, 가령 현재 한국의 출산율 1.07명을 단순한 숫자로 봐서는 안된다. 숫자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를 봐야 한다. 피상적으로 몇 명 낳았다고 보겠지만, 질적으로 예전에는 2명 낳았는데 현재는 왜 1명 밖에 낳지 않을까를 봐야 한다. 취업하기 어렵고, 결혼하기 어렵고, 출산하기 어렵고, 애 키우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런 것들이 어렵다고 보는 사회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들의 출산율 평균은 1.6명이다.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특히 육아선진국으로 꼽히는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 각각 1.8명, 1.9명이다. 이들 국가들은 OECD 평균을 넘어선다. 1.8명 또는 1.9명이면 평균 2명이라는 소리인데, 이들 국가는 '평균 2명을 낳아서 키워도 괜찮은 사회다'라는 맥락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해마다 정부에서 각종 출산, 보육 정책 등을 내놓고 있지만 저출산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뭐라고 보나.
 
정책적 노력은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다. 물론 그것이 효과적이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저출산 문제, 매우 심각하다면 정책적 노력을 하는 것도 평상시처럼 그 수준의 노력을 해서는 안된다. 평소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현재까지 18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도 어려운데, 이 특단의 조치를 안하겠다고 하면 문제 해결이 더 어렵지 않겠나.
 
특단의 조치, 어떤 것을 의미하나.
 
보통 국가사회적으로 '우리가 이 정도 정책할 수 있다'라는 맥시멈이 있다. 그것을 초월하는 정책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지금 정책적으로 그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출산 문제나 육아 문제와 관련된 것은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가 지금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아직 하고 있지 못하다고 답한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책이 먼저 개발돼야 한다. 돈이 들어가는 것은 정책 이후의 문제다. 결혼·출산·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지금은 정책개발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해야 하는 정책은 거시적으로 프레임을 짜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고,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구조의 정책이어야 한다. 그럴려면 큰 정책보다는 작은 정책들이어야 한다. 정책의 방향을 잡는 큰 정책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삶에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주 세심한 작은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성의 육아 참여도 중요해지고 있다. 현실이 녹록치 않은데, 남성의 공평한 양육 참여를 위한 방안은.
 
현재 한국은 세대별로 의식의 흐름이 아주 빠르다. 결혼·출산 문제는 젠더(Gender·성) 의식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남성들은 지금보다 젠더 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 변화에 여성의 민감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크다. 저출산 문제, 출산·육아·노동 문제에 있어 보다 젠더 평등적인 사회 의식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사진/육아정책연구소
의식과 시스템은 단순히 의식의 변화로만 되지는 않는다. 남성이 굉장히 젠더 평등한 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남성의 노동시간이 길다면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한다. 장시간 노동구조로 연관되는 문제인데,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앞서 '육아권'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는데, 아빠의 육아권을 보장하려면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곧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는데 정착되기까지는 여러가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연착륙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육아정책연구소장으로서 목표와 향후 계획은.
 
좋은 육아정책을 만드는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 연구소장하기 전에 자문활동도 많이 하고,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도 많이 했다. 우리나라가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책연구기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는 국책연구기관이 이렇게 많지 않다. 육아정책연구소를 비롯해 국책연구기관들은 개인이 자문활동에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막강한 정책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대로 계속해서 육아정책 연구범위를 확대하고 생태계를 확산하는 데 노력할 것이며, 국민이 체감하고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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