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할리데이비슨이 미국을 떠나는 이유
1980년대 무역구제조치 요청 효과 못봐···혁신으로 회생
입력 : 2018-07-15 17:17:00 수정 : 2018-07-15 17:57:18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115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제조업의 간판인 할리데이비슨(할리)이 자국 생산기지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박에 가까운 질타를 쏟아내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2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경내에 세워져 있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 경탄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트럼프 대통령과 할리데이비슨은 올해 할리데이비슨이 생산시설 일부를 유럽에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전 세계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하고 자국 기업들을 위해 보호무역 배수진을 친 상황에서 할리의 이탈이 달가울 리 없다. 때문에 할리의 이번 발표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보호무역 정책에 가장 실망한 기업이 할리라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자유무역 신봉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학 교수는 저서 ‘공격받는 자유무역’에서 할리의 사연을 소개했다.
 
할리는 1980년대 초반까지 배기량 1000cc 이상의 대형 오토바이만 생산했다. 경쟁자인 일본 기업들은 자국에서 생산한 중형 오토바이(배기량 700~850cc)를 미국으로 수출해, 직접적인 맞대결은 없었다. 그러다 1975년 가와사키가 네브라스카에, 1979년에는 혼다가 오하이오에 공장을 준공하며 할리와 직접 경쟁하는 대형 오토바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경기가 불황에 빠지자 할리의 주요 소비계층이었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특히 타격을 입었다. 판매 부진에 할리는 자금 압박을 받았다. 할리는 1982년 10월 정부에 통상법 201조 도피조항에 따른 수입구제 조치를 요구했다. 201조는 특정 국내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경우, 이들 산업이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특별관세 등을 취하는 일시적 구제조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할리가 피해를 입은 주요 원인이 수입 때문인지를 판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극심한 불황에 일본산 오토바이 수입도 급감한 데다, 수입 물량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다. ITC는 논의 끝에 할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혼다의 오하이오 공장과 가와사키의 네브라스카 공장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 국내 산업의 일부라고 판정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ITC 권고를 받아들여 배기량 700cc 이상 수입 오토바이에 ‘관세 할당’을 실시했다. 관세 할당은 일정량의 수입량을 초과하는 품목에 대해 기존 관세보다 높은 보호관세를 지불하도록 해, 국내 산업을 보호함에 그 목적이 있다. 최초 관세율은 45%로,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토록 했다. 그런데 혼다와 가와사키는 중형 이상의 오토바이를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호 조치는 할리의 매출 향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혼다와 가와사키는 201조 조항을 환영했다. 보호 조치 덕분에 일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쟁기업인 스즈키와 야마하를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즈키와 야마하도 700cc 이상 오토바이 수입에 대한 관세 할당을 피할 수 있는 묘안을 마련했다. 관세 할당을 받지 않는 699cc 오토바이를 생산한 것이다. 스즈키와 야마하는 관세 할당 아래서 45%의 추가적인 관세를 지불하기 전보다 대형 오토바이를 더 많이 수출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됐다. 할리는 수입구제 조치에 깊이 실망했고, 201조 만료 시안 이전에 이를 포기했다.
 
미국 정부는 아직껏 할리 회생이 무역 구제조치의 성공적 사례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어윈 교수는 할리가 회생하고 소생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허술한 재고 관리 시스템과 노후화된 생산 방법에 질겁한 새로운 경영진이 생산공정의 효율성을 극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제도 회복되면서 세세한 생산 현황에 주의를 기울인 효과까지 겹치면서 할리의 경쟁력이 회복됐다는 분석이다.
 
혁신 활동이야말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보호무역의 폐단을 경험한 할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떠나기로 한 것은 결국 생존을 위해서다. 한국 기업들은 이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보호무역 우산에만 기대거나, 이를 탓하기보다 할리처럼 생산성 향상을 이뤄내는 것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유일한 길임을 할리는 일깨워줬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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