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시노다 “베닝턴 상실, 모든 게 바뀌었다”
"상실의 아픔, 음악과 미술로 극복"…오는 8월11일 '펜타포트'로 내한
입력 : 2018-07-20 17:35:47 수정 : 2018-07-20 17:35:4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예기치 않은 이별은 삶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었다. 슬픔의 잔상은 내면에 아로 새긴 인장 같았고,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그가 떠난 첫 주, 바닷가에서 길을 잃은 사람 같았죠. 그 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고 두려웠어요. 슬픔은 갈수록 나아지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었어요.”
 
미국 록 밴드 린킨파크의 마이크 시노다(래퍼 겸 프로듀서)는 동료 체스터 베닝턴(보컬)을 하늘로 보내고, 열병 같은 후유증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해 7월 베닝턴이 사망하면서 린킨파크는 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그는 그 해 10월 추모공연 외 별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1월 자신의 본명 ‘마이크 시노다’를 내걸고 새 앨범 ‘포스트 트라우마틱(Post Traumatic)’으로 돌아왔다.
 
심리학계에서 ‘외상 후 성장’이라 불리는 ‘포스트 트라우마틱 그로스(Post Traumatic Growth)’의 준말로 추정되는 제목이다.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마이크 시노다. 사진/워너뮤직코리아
 
20일 전화로 만난 시노다는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스튜디오나 음악, 인생, 모든 것이 두려웠어요. 집을 몇 주간 벗어나지 않았죠. 아주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과 음악, 그림의 도움을 받았어요.”
 
“많은 것이 내 안에서 변하고 있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나 자신과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이 매일 매일 놀라울 정도로. 그 순간들이 지나갈 때 그것을 포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앨범을 완성했어요.”
 
린킨파크 활동 시절 그는 ‘포트마이너(Fort Minor)’란 명칭으로 솔로 활동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의 본명을 걸고 낸 이번 앨범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기에 포트마이너도, 린킨파크도 아니다. 그는 “그 전의 두 명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면, 이 앨범은 내 이야기기에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베닝턴의 상실을) 긍정적인 기운으로 극복해가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마이크 시노다. 사진/워너뮤직코리아
 
베닝턴의 상실, 그로 인한 슬픔을 그는 많은 도움으로 극복 중이다. 안부를 묻고 찾아오는 친구들과 애정을 쏟아주는 가족과 팬들. 그는 “주위 사람들이 나와 체스터, 밴드 멤버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며 “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 존재였는지, 잊고 있던 사실을 돌아보게 해줬다”고 회고했다.
 
음악과 미술은 트라우마를 극복해주는 또 다른 치료제였다.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시키기 위해 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직접 그린 아트북도 게재돼 있다. “밑그림만 그린 것들은 팬들이 직접 색을 입힐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어요. (베닝턴을 보낸) 팬들 역시 그들만의 치료와 명상을 할 수 있길 바라요.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에요.”
 
장르적 관점에서 보면 새 앨범은 린킨마크 만큼이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랩과 록, 헤비메탈,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등이 혼재한다. 그는 “일단 작업에 돌입하면 장르라는 개념을 머릿 속에서 지워버리는 편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레이블 측에서 어떤 장르로 넣어야 하냐 물었는데, 답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얼터너티브’로 정하긴 했지만요. 그건 린킨파크의 많은 앨범이 그렇게 분류 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에요. 장르 질문을 받으면 그 때 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90년대 암울한 시절을 보낸 린킨파크는 젊은 청춘들에겐 노력과 성공의 표상이었다. 1996년 결성 당시 마이크 시노다(프로듀서)의 침실을 레코딩 스튜디오로 활용하며 그들은 곡을 쓰고 노래했다. 수많은 음반 레이블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좌절을 겪는 순환도 계속됐다.
 
마이크 시노다. 사진/워너뮤직코리아
 
그러나 음악이란 꿈만은 잃지 않았다. 결국 2000년대를 상징하는 밴드가 됐고, 그들은 ‘랩 락’이란 장르를 대중화시켰다. 2회의 그래미상 수상, 총 6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세계적인 스타 밴드로 우뚝 섰다.
 
“린킨파크 음악의 핵심은 다양성이었어요. LA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이었지만 가족들은 멕시코, 한국, 일본, 이스라엘, 러시아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죠. 당연히 다른 문화와 생각, 다른 시각에 익숙했어요. 그게 우리가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마이크 시노다. 사진/워너뮤직코리아
 
앞으로 린킨파크의 활동을 묻는 질문에 시노다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내 답은 답이 없다는 것이에요. 나를 비롯한 모두가 답을 원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아무 답이 없기 때문이죠. 멤버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만나고는 있지만, 음악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아요. 서로의 인생과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는 8월11일엔 인천 송도국제도시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펜타포트락페스티벌(펜타포트)’ 무대에 선다. 린킨파크 멤버들과 한국을 방문했던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그는 “우리 멤버인 조 한이 자란 국가인 데다 대학교에서 한국인들이 많은 지역에 살아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며 “음식, 사람들, 문화 전부 다 좋아하고, 전통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멋진 국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가서 얼른 무대를 보여드릴 생각에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제 앨범과 모든 것을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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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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