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부총리가 발표한 SK하이닉스 투자 계획
입력 : 2018-07-29 15:51:29 수정 : 2018-07-29 17:21:13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SK하이닉스가 지난 27일 총 15조원 규모의 경기도 이천 M16 반도체 공장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15년 이천 M14 공장 완공식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밝힌 총 46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사업 투자 방침의 일환이다.
 
대규모 투자였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발표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하루 전인 26일 오전 2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고, 이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컨퍼런스 콜도 진행했지만 투자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케펙스(CAPEX, 미래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지출된 비용, 투자) 비용은 8조원 수준이다. 하반기에는 청주 M15 공장의 완공과 초기설비도입으로 상반기 보다 약간 상회하는 케펙스를 예상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낮겠지만 우시 공장에 투자해야 해서 높은 수준의 케펙스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한 게 다였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소문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들에게 “조만간 빠르면 이번 주 내 한 대기업에서 약 3조~4조원 되는 규모의 투자를 발표한다”면서 “중기적으로는 플러스 한 15조원 되는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어떤 기업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언론의 취재경쟁이 이어졌다. 김 부총리가 앞서 만난 LG, 현대자동차, SK는 물론 다음 달 만나겠다고 예고한 삼성도 전화세례를 받았다. 결국 이날 저녁 기재부가 해당 대기업은 SK하이닉스라고 밝혔고, SK하이닉스도 그제야 자사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경기도 이천시에 소재한 SK하이닉스 M14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대규모 투자는 중앙정부와 공장이 들어설 지방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은 중앙·지방정부가 요청하면 시기를 조율해 같은 날 함께 발표한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이러한 관행을 따르지 않고 먼저 계획을 공개했다. 더군다나 SK하이닉스는 투자 계획을 이번 주에 발표하기로 예정했기 때문에 이사회도 개최하지 않은 상태였다. SK하이닉스는 27일 아침 급히 이사회를 소집해 안건을 승인하고 발표했다. 예정되어 있던 사안이었던 만큼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놀란 분위기가 역력했다. 투자자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한 가운데 장관에 의해 공개된 것은 올바른 절차는 아니었다.
 
재계는 경제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조급증이 SK하이닉스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큰 투자 건은 원래 지자체와 통상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라든지, 환경부, 기재부 등으로 관련 내용이 올라가고, 기재부에서 이런 사항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날 (김 부총리)발언이 나온 걸로 안다”면서 “정부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고 있고, 내수 경제를 살리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이천공장 투자에는 감동적인 뒷이야기가 담긴 점도 김 부총리가 의욕을 내세운 이유로 보인다.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소재한 이천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법)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 권역에 포함되어 수질 관련 법령까지 적용받는 규제의 종합세트였다. 2006년 SK하이닉스가 이천 공장 증설을 발표하면서 불거진 규제를 풀기까지 무려 7년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이천시와 지역단체는 물론 주무부처였던 산업자원부까지 나서 전 방위적 지원을 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김 부총리도 “그동안 기업이 투자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을 같이 고민하고 관계 부처 협의하면서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언급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두고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향후에도 정부가 기업의 투자계획을 미리 발설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경우, 과연 어떤 투자자들이 이런 행태를 이해하겠느냐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기업을 휘두르는 구태는 여전하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고 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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