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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현대·기아차 대리점 영업사원은 노동자"
개인사업자 아닌 노동자로 최초 인정…노조 "실 사용자는 현대·기아차"
2018-08-16 17:51:04 2018-08-16 17:51:04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법원이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을 노동자로 규정하면서 현대·기아차 대리점 판매 영업사원(카마스터)의 노동3권이 인정됐다. 현대·기아차 차량을 판매하는 1만여명의 영업사원들은 향후 노조를 통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홍순욱 부장판사)는 16일 현대차 금암판매대리점주 A씨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영업사원은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와 함께 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리점주가 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6월 대법원이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뒤 나온 첫 하급심 판결이다. 
 
 
이번 법정 다툼은 A씨 등이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2016년 판정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취소 소송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판매 영업사원 B씨 등 10여명은 2015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의 자동차판매연대지회(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했다. 대리점주는 노조 조합원에게 차량판매 인센티브를 금지하고, 판매용역 계약을 해지하는 등 노조활동 무력화에 주력했다. 판매용역 계약 해지는 사실상의 해고 통보다. B씨 등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다며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다. 전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복직 판정을 내리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은 자동차 대리점 판매 영업사원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되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리점주는 영업사원은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노동자로, 노조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닌 만큼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1심 법원은 대리점 영업사원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영업사원이 경제·사회적 이익을 위해 노조활동을 할 경우 사용자는 영업사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판매 대리점과 영업사원 양자 간의 소송인 만큼 향후 양측이 교섭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는 설명이다. 현대·기아차 영업소는 직영점과 대리점으로 구분되는데 직영점은 본사가, 대리점은 점주가 사용자다. 직영점 영업사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기본급과 성과급을 받는 반면 대리점의 경우에는 기본급 없이 판매수당을 임금으로 지급했다.
 
이날 법원 판결로 영업사원들도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노조법에 따라 노조 가입과 활동도 보장된다. 쟁의행위 절차를 거칠 경우 파업 등의 단체행동도 할 수 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는 고의로 교섭을 지연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사용자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인사·금전적 불이익을 줘서도 안 된다. 불이익을 줄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노조는 대리점과 교섭을 통해 기본급(고정급)과 4대보험을 요구할 계획이다. 현재 차량 판매로 인한 성과급만 받고 있어 생계가 불안정하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4대보험 가입도 제한돼 사회보험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특히 법원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통해 영업사원의 실제 사용자가 현대·기아차인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앞서 2016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노조활동을 막기 위해 현대·기아차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노조가 설립되면서, 조합원의 영업사원 사번이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영업사원은 사번을 통해 현대차 인트라넷에 접속한다. 사번 등록과 관리는 현대차가 맡고 있다. 이를 통해 차량 판매, 출고, 등록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사번이 삭제되면 영업이 막힌다. 노조 조합원 유무가 대리점 재계약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리점주 C씨는 2016년 6월 "우리가 살아남는 건 (영업사원이 노조에서)탈퇴하고, 본사는 박수치고 (대리점)재계약을 해주는 거지"라고 노조 조합원에게 말한 바 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영업사원의 인사·노무관리에 현대차가 개입, 실제 사용자라는 주장이다.
 
이번 판결은 특수고용직노동자를 사용하는 업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들어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의 노동3권이 폭넓게 보장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택배기사로 구성된 택배연대노조가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같은 해 보험인권리연대노조가 출범, 보험설계사의 처우 개선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의 노동권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대법원은 앞서 1996년과 2005년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수고용직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쌓이면서 노조 설립과 활동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특수고용직노동자의 규모는 대략 230만명으로, 노동계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8~9%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달 31일 특수고용직노동자와 예술인을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자로 지정했다. 태스크포스를 통해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직종을 정할 방침이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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