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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 사람이 없다)고단한 생존경쟁…살아남아도 불안
인력 절반이 현장 떠나, 살아남은 자도 고통…붐볐던 지역 상가는 유령도시로 변해
2018-09-14 06:00:00 2018-09-14 06: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경상북도에 소재한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A씨. 그는 최근 3년의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더 어둡고 험난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협력업체에 입사했을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일하면 본사로 옮길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수주절벽으로 일감이 줄어들더니 급기야 월급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사장이 “젊고 능력 있을 때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며 추천해 준 창원의 기계공장으로 적을 옮겼다. 하지만 이 회사도 1년이 안 돼 문을 닫았다.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려고 수소문한 끝에 온 곳이 지금의 회사다. A씨의 집은 부산이라 회사에서 마련해준 직원 숙소에서 생활하고 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간다. 미혼인 A씨는 “결혼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일단 이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 찾아 전국으로 떠돌이“살아야 한다” 절박감
지난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드를 떠난 조선인은 7만명이 넘었다. 앞선 해에 그만둔 4만여명보다 숫자가 늘었다. 이들은 더 어려워진 여건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2만223명, 삼성중공업 1만8575명, 대우조선해양이 7358명의 대규모 인원을 줄였다. 또 현대삼호중공업 2230명, 현대미포조선 2313명이 구조조정의 아픔으로 실직자가 됐다. 현대중공업 조선 3사는 2016년 1만3444명에 이어 지난해에도 2만4766명이 줄어, 2년 사이에만 3만8210명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2016년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던 대우조선해양과 2017년 1만명 넘게 줄인 삼성중공업을 더하면 울산과 거제 지역경제가 어느 정도 악화됐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2014년경 조선업계가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때만 해도 사정은 나았다. 그해 STX조선해양 직원들은 주변 조선사 등에게 “회사가 어려울 뿐이지 모두가 인재들”이라면서 퇴직 직원들을 뽑아줄 것을 요청했고, 일부 인력들은 그렇게 이직했다. 김해 신공항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공사 소식도 들려 그쪽에서도 퇴직 인력들을 흡수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SOC 공사는 진척이 더디고, 다른 제조업들도 불황에 빠져, 평생 쇠를 만지며 살아온 인력들이 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다. 서울로 올라온 이들도 꽤 있다. 거제지역 조선소에서 크레인 기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인력조정으로 실직자가 된 40대 B씨도 반년 전 서울로 올라와 차량형 크레인 회사에 월급기사로 취업했다. 급여는 조선소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에 맞춰 규칙적으로 일하고 휴식을 갖는 조선소와 달리, 서울은 지역 공사장을 이동하면서 일해야 하는 특성상 새벽 2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상황을 반복해야 한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도 힘들지만 가족을 고향에 두고 올라온 그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비좁은 고시원 생활을 하고 식사도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B씨는 “조선소에서 업무 부담이 크다고 느꼈던 시절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 생활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면서 “몸만 괜찮다면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안 될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가, 월급은 적어도 안정된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배에게 기술 전수하고 싶지만…현실은 '냉혹'
조선소를 떠난 인력 중에는 정년을 채우고 명예롭게 은퇴한 이들도 있다. C씨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30년 넘게 대형 조선소에서 근무한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은 배가 100척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목소리 톤이 밝지만은 않았다.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C씨는 “선배들 정년 퇴임식 때는 정말 힘차게 박수를 치며 축하를 해줬는데, 막상 제가 그 자리에 서니 후배들에게 짐만 떠넘기고 가는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무조건 살아남아라. 반드시 희망은 온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떠날 줄은 몰랐다.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예전만 해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정년 퇴직자들은 회사에 계약직으로 재고용되거나 협력사에 임원급으로 취업하기도 하고, 아예 협력사를 차리는 등 터득한 기술을 전수하며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C씨는 불러주는 회사가 없어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꿈 같은 이야기다. 있는 사람도 내몰리는 상황에서 퇴직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설사 기회가 와도 어떻게 가겠는가"며 되물으면서 "한 번은 외국 조선소로 간 동료로부터 그곳으로 와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평생 한국 조선업을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터득한 기술을 한국 조선소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우리는?” 불안감만 커져
조선소에 남은 사람들도 그들대로 불안감이 크다. 경남지역의 한 중소 조선소는 최소한의 인력이 출근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없어 수개월째 사무실에 앉아만 있다. 직원 D씨는 “월급은 받지만, 야근이나 초과근무 수당 같은 게 없다”면서 “정말로 힘든 것은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바로 조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걸레와 공구를 들고 장비들을 닦고 조이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언제 장비를 재가동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대형 조선소들도 분위기가 흉흉하다. 조선소 주변은 예전보다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조선소 내에 마련된 직원식당들 중 일부는 폐쇄됐고, 문을 연 식당에도 예전처럼 사람이 북적대는 광경은 찾기 어렵다. 불과 2~3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악화될 수 있는지, 공허함도 든다. 더 이상 인력조정은 없다고 회사는 말했지만, 수주가 안 되거나 예상보다 적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추가 인력 감축은 예정된 일정표가 됐다. 때문에 직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대형 조선소 직원 E씨는 “몸은 힘들어도 동료들과 어울리며 흥으로 일하는 게 우리 문화였는데, 지금은 서로 대화도 없어졌다”면서 “요즘 들어 ‘우리는 뭐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그만큼 희망적이지 않다”고 토로했다.
 
조선소 주변 주거시설과 상권은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앞에 있는 오피스텔촌에는 건물주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이 지역 5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이 3억원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도 들린다. 성동조선해양이 소재한 경남 통영 안정산업공단 앞 주택가도 비슷한 상황이다. 주변 상가·식당 등도 모두 장사가 안 되면서 사람들로 붐비던 상업가는 유령도시가 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100년대 들어 한국 산업군 중 조선이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전체적으로 패닉에 빠진 상황”이라면서 “쉽지는 않지만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떠난 조선 인력들이 다시 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한국조선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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