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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 사람이 없다)세계 제일 선박 건조기술도 단절 위기…매출의 0.6%만 'R&D'
2016년 조선업 R&D 1774억…연구인력 이탈도 심각
2018-09-14 06:00:00 2018-09-14 06: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조선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개발(R&D) 활동도 사실상 중단 상태다. 업황 전망이 극도로 불투명,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줄어들면서 세계 제1의 선박 건조기술 단절 우려가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최근 발간한 ‘2018 조선자료집’에서 매년 집계·발표했던 조선산업분야 ‘연구개발비’와 ‘연구인력 추이’의 지난해 통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제작상의 오류라고 하지만, 회원사들에게 문의한 결과 워낙 수치가 좋지 않아 누락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 협회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2016년 조선업 R&D 투자액 고작 1774억원
2016년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그해 조선업계의 R&D 투자액은 1774억원으로 2008년(1825억원) 이후 9년 만에 연간 기준 1000억원대로 떨어졌다. 업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60%로,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선업계의 R&D 투자액은 2009년 2000억원을 넘어선 뒤 이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4년 3855억원까지 늘었다. 당시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중은 1.69%였다. 회원사들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2016년 상황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석·박사급 연구 인력의 이탈도 심각하다. 2016년 기준 조선소에 적을 두고 있는 고급 연구 인력은 1801명으로, 전년 1894명 대비 93명 감소했다. 박사급이 267명에서 167명, 석사급은 913명에서 556명으로 각각 100명, 357명 급감했다. 기타에 속하는 인력이 714명에서 1078명으로 354명 늘어나면서 전체 인력의 감소를 그나마 막았다. 기타 인력에는 석·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학사급 인력 또는 조선사와의 용역계약 체결을 통해 연구활동을 하는 인력 등이 주로 포함된다.
 
조선소에 고용된 고급 인력은 박사의 경우 2014년 324명, 석사는 2013년 107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줄어들고 있다. 각 조선소별로 수주 부진에 따른 눈 앞의 대대적인 구조조정만 신경 쓰다, 중장기적 경쟁력을 담보하는 R&D 부문을 소홀히 하면서 빚어진 촌극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R&D에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사정이 나아지는 대로 R&D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책 연구소이자, 국내 조선·플랜트 기술 개발의 대표적인 씽크탱크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CO)도 사정은 비슷하다. KRICO의 지난해 인력 수는 267명으로, 전년 287명보다 20명 줄었다. 박사급은 88명에서 93명으로 5명 늘었으나 석사급이 25명에서 22명으로, 기타인력은 174명에서 153명으로 줄었다.
  
기술교육원 수료생 9년 만에 8000명에서 605명으로 급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를 포함한 8개 대형 조선소에서 운영하는 기술교육원이 지난해 배출한 수료생 수도 605명에 그쳤다. 8000명을 넘었던 2008년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2012년 2400명을 교육했던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10명에 그쳤고, 대우조선해양 141명, 삼성중공업 45명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인 현대삼호중공업은 15명, 현대미포조선 38명이었으며, 중견 조선소인 STX조선해양이 53명, 한진중공업 55명, 대한조선 48명 등이었다.
 
기술교육원은 조선업체들이 자사와 협력회사에 필요한 생산인력을 위탁 양성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용접·도장·전기·기계 등 분야별로 3~5개월간 교육을 무료로 실시한 후 조선소나 협력회사, 중소기업 등에 취업을 알선해주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기술교육원을 수료한 뒤 협력업체에서 1년을 근무하면 본사 조선소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로 인해 한때는 기술교육원 수료생 모집 경쟁률이 평균 3대 1에 달하기도 했다.
 
수료생 감소는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수요가 그만큼 줄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료생 모집을 하지 않으며, 다른 조선사들도 계획이 없거나 1~2회 소규모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학과 취업률로 60%대로 '뚝'
대학과 대학원의 조선·해양 관련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도 60%대로 내려앉았다. 한국교육개발원 취업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조선·해양 관련학과 졸업생 수는 전문대학 1241명, 대학교 1050명, 대학원 198명으로, 취업자는 각각 837명, 646명, 121명이었다. 취업률이 67.4%, 61.5%, 61.6% 등 70%를 넘지 못했다. 전년도 취업률은 각각 73.3%, 80.3%, 83.7%였다.
 
상급 교육기관 진학률이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취업률이 10%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은 그만큼 취업 문을 뚫기가 어려웠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특히 졸업생 취업자 수는 조선·해양 분야 기업만이 아닌 다른 업종 취업자까지 포함하는 수치다. 각 대학에서도 관련학과의 졸업생 중 상당수가 비조선 계열 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조선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신입사원 채용을 중단해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래선지 다른 분야의 기업으로 취업하기 위해 전과를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기술 단절을 막기 위해서라도 업체들이 일정 수준의 졸업생들을 채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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