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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④Post-100대 국정과제와 '국가비전 2050'
누에가 나비로 변화하듯 내적 성찰과 예견적 자기변화로 선진국 문턱 넘어야
국정과제 평가하고 재조정하는 과정 통해 2기 국정 아젠다 제시해야
2018-09-17 07:00:00 2018-09-17 08:57:35
1997년 외환위기(IMF) 이전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를 오르내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국민소득은 3만달러 내외에서 고착됐다. 한국이 20년간 정체된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 대한민국 체제와 제도, 사람으로도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까. 독일과 비슷한 5만달러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다. 지금 한국 경제는 동네 바둑으로 치면 5급이다. 아마추어가 프로 실력을 갖추려면 바둑을 생각하는 틀과 접근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아마추어 실력은 오히려 바둑 성장에 독이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계사에 없던,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한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면 국가운영 방식과 사고의 틀을 근본에서부터 백지상태로 되돌려 생각해야 한다. 많은 나라가 여기에 실패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르헨티나다.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에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에 가장 근접한 나라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에는 오히려 추락했다. 거의 100년이 넘도록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문턱은커녕 중진국으로 남았다.

국가운영 방식, '나비 전략'으로 혁신해야
 199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신화도 마찬가지다. 신흥시장인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선진국에 진입할 듯한 낙관적 기대가 팽배했다. 그러나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로 신화는 물거품이 됐다. 최근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등 BRICs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대두됐지만, 이들 역시 부침을 겪으며 전망이 불투명하다.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누에-나비' 전략을 통한 질적 변화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용이나 호랑이에 빗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비의 변태 과정을 되새겨야 한다. 알에서 세상으로 나온 누에는 1령부터 2~5령을 거쳐 성장한다. 이후 누에는 고치라는 죽음의 단계를 맞는다. 그리고 누에는 비로소 나비로 변화한다. 누에가 나비로 변하기 위해 성찰과 죽음이라는 단계를 지나듯 한국도 선진국 문턱을 넘으려면 성찰과 죽음의 단계가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7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 참석, 각국의 지도자들과 오찬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부가 국정운영에서 지혜를 발휘한다면 구태여 죽음이라는 물질적 고통과 희생을 겪지 않고도 연착륙할 수 있다. 위기를 감지하고 시대를 통찰해 외부 충격이 오기 전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정부에 필요한 것도 대한민국이 누에에서 나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적 성찰과 예견적 자기변화를 발휘,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이다. 한국에는 IMF를 전후해 질적 변화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결국 외적 강제에 의한 변화를 감수해야 했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국가 전략목표로 설정,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1994년 11월 호주 시드니에서 '세계화 선언'을 하고 OECD 가입조건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인위적으로 맞추고자 저환율정책을 고수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고 OECD에 가입했지만 IMF 관리체제로 추락하는 혹독한 결과를 맞았다.
 
문재인정부의 시대적 과제도 성찰과 예견적 자기변화다. 최근 소득주도성장론에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도 때문에 고용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통계는 집값 문제와 더불어 현 정권의 최대 난제다. 하지만 성찰과 예견적 국정운영이 필요하다. 지금의 고용악화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가 예견한 일이다. 박정희 시대의 중화학공업은 그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지만,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고 사양산업화 되면서 부산과 창원, 거제 등에서는 대량의 실업이 발생했다. 그런데 유럽도 대형조선사들이 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면서 조선업이 몰락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정작 조선업 관련 일자리는 28만개나 된다. 선박 설계 등에서 유럽은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도 이런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트렌드의 변화에서 미세한 신호 감지해야
 
최근 가장 큰 고용불안을 낳고 있는 도·소매와 음식·숙박업 등의 종사자는 2010년 648만명에서 2016년 762만명으로 114만명 증가했다.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 생활서비스업으로 진입한 게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산업의 고용구조 변화를 보면 흥미롭다. 제조업의 고용비중은 1995년 27.2%에서 2016년 19.2%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서비스업은 72.1%에서 80.5%로 올랐다. 그런데 이 기간 도·소매와 음식·숙박업 등의 고용비중은 40.1%에서 36.2%로 감소했다. 고용구조의 중장기 변화를 보면 앞으로 고용이 어디서 생겨나고 어떤 일자리들이 사라질지 알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일자리의 변화를 고려하면 정책방향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이런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미세한 신호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게 정부의 과제다. IMF 전에 들었던 '펀더멘탈은 괜챦다'는 넋 빠진 정책당국의 무감각을 보이지 않길 바란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직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만들어 5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지금부터 2020년 4월 총선까지는 현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결정적 시기다. 2019년 11월이면 5년 단임제 정부가 반환점을 맞는다. 지금부터 정부의 집권 2기 아젠다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이전 정부처럼 국민적 공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돌출적 아젠다가 속출할 수 있다. 국민의 공감을 얻으면서 미래사회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출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서 제안한 100대 국정과제에 대한 중간점검이 꼭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의 국정과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이 필수다. 국민들에 2기 아젠다를 알리고 추가·조정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사진/뉴스토마토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던져진 질문
 
100대 국정과제의 약점은 5개년 계획으로 설정된 탓에 5년 뒤의 국정운영 방향과 연계성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5대 국가비전,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 487개 세부 실천과제'로 구성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은 과거 역사에 대한 평가도, 30년 이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이 현 정부 5년에만 초점을 맞췄다. 100대 국정과제에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과 광화문 대통령,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 등의 국정전략이 제시됐다. 일자리 경제와 공정경제, 민생경제, 4차 산업혁명도 포함됐다. 포용적 복지국가와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차별 없는 공정사회, 문화국가도 국정전략 중 하나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과 자치분권, 균형발전, 강한 안보와 책임국방,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역시 주요 전략이다. 이처럼 국정과제에서는 이전 정부와 단절하고 새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이 확인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보다 근원적 질문은 따로 있다. '왜 한국은 20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 2~3만달러에서 멈췄는가', '한국은 제국이나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등이다. 세계사에서 어느 국가도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국이 지금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2050년이 되더라도 현재의 소득수준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것이다. 국정비전 2050을 모색할 때 가장 고민할 것은 현재와 같은 방식을 탈피,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는 중진국 수준에서 어느 국가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2050년 미래를 위한 대한민국 국가전략에서 핵심적으로 고민할 부분은 누에-나비 전략이다. 해방 후 정부 수립과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까지는 누에가 양적으로 커가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나비로의 질적 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은 문재인정부의 위기이자 기회다. 경제적으로는 기존 중화학·제조업에서 글로벌 플랫폼 산업생태계로 바뀌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이 격심하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70%대에서 50%대로 낮아지면서 정부는 조금 더 성찰적 기회를 얻게 됐다. 국정기획 2050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에 대한 논쟁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려는 측면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이 파생하는 삶의 문제가 치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해법은 정략적 계산에서 벗어나 30년 이후라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냉정하고 차분해야 한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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