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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췄던 철마, 다시 달린다…'아산의 꿈'도 현실화
“서울·평양 거쳐 모스크바까지 우리 열차로”…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발돋움 기대
2018-09-19 18:03:24 2018-09-19 19:27:42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우리가 만든 열차로 서울에서 출발해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를 건너 모스크바로 가고 싶다!”
 
1977년 철도차량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현대차량(현 현대로템)을 설립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직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그의 숙원이 40여년만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단독 정상회담 뒤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교류의 새 장이 열림을 대내외에 알린 것으로, 남북 경협을 위한 초석도 다지게 됐다. 남북 간 철도 연결은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진 사안으로, 올해 세 번에 걸친 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였다.
 
남북 간 철도는 연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는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몽골종단철도(TMGR)는 물론 서유럽 철도망과도 연결되는 ‘유라시아 횡단철도 노선’의 시작이다. 해저터널을 통해 일본과도 연결되는 꿈의 실크로드다. 이를 통해 한반도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남북 접경지역 철도중단점 표지판(왼쪽). 현대로템이 독자 개발한 고속열차 '해무'. 사진/뉴시스. 현대로템
 
정주영 명예회장은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부터 한반도가 대륙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철도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북한 등을 방문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그 길을 현대자동차가 오가는 꿈을 꾼 것처럼, 남북과 러시아, 유럽으로 연결된 철길 위를 현대가 만든 열차가 달리는 큰 그림을 40여년 전부터 구상했다.
 
철도차량 사업은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어받았다. 정 회장은 1985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이 현대차량을 흡수합병하면서 열차 개발사업을 직접 챙겼고, 지금도 창원공장에 전화를 걸어 개발 상황을 물을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현대로템은 프랑스 알스톰으로부터 떼제베(TGV) 기술을 도입해 면허생산한 ‘KTX-I’,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국산화율을 높인 ‘KTX-II’(KTX산천)에 이어 독자기술로 최대 시속 400km급의 고속열차 ‘KTX-III(해무, HEMU-430X)’를 개발했다. 이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에 버금가는 정 회장의 성과로 평가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KTX산천이 알스톰과 비교해 기술 수준이 65%에 불과하다면 해무는 100% 따라잡았다. 오히려 세부 성능에서는 한수 위”라며 “해무를 통해 한국은 주요 고속철도 차량 개발 국가로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남북 간 철도 연결은 범 현대가의 결집을 다지는 계기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0년 북한과의 합의에 따라 북한 철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 이외에 현대다이모스가 철도차량용 감속구동장치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대글로비스는 남북 간 물류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철도차량 관련 솔루션을 개발,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간 철도 연결 사업을 통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등 범 현대가 오너들이 협력할 수 있다.
 
해무 등 한국 기업이 제작한 열차가 남북 철도를 달리게 되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국내 철도차량 산업의 성장도 기대된다. 한국철도차량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6000억원에 불과하며, 현대로템을 포함한 210여개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종사자 수도 4000명이 채 안 된다. 업계 관계자는 “남북 철도 연결은 연관산업에 매우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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