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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자동차도 선방…통상분쟁 불확실성 제거
한미FTA 자동차 개방폭 늘렸지만 실질적 타격 없을 듯…섬유, 얀 포워드 예외 첫 인정…ISDS 남발도 제한
2018-09-26 17:09:26 2018-09-26 17:43:31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정에 서명하면서 대미 수출기업들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통상 압박 등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며 대체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최대 이슈가 된 자동차는 당초 우려와 달리 우리가 입을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기업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반덤핑·상계관세 등 미 정부의 통상절차 투명성이 강화됐고, ISDS(투자자·국가분쟁해결) 제도의 남발도 제한된다. 원산지 규정 개선으로 한국산 섬유·의류의 대미 수출 확대도 기대된다. 개정안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도 많아 오히려 미국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픽업트럭 목맸지만…한국 영향 미비
개정안은 미국 내 화물자동차 관세 철폐 기간을 현재 10년(2021년 1월1일 철폐)에서 20년을 추가해 2041년 1월1일로 연장했다. 미국이 부과하는 승용차의 수입관세는 2.5%인 반면, 화물차는 25%다. 대상 차종은 HS코드 분류에 따라 ▲5톤 이하 디젤트럭 ▲5톤 초과 20톤 이하 디젤트럭 ▲20톤 초과 디젤트럭 ▲5톤 이하 가솔린 트럭 ▲5톤 초과 가솔린 트럭 ▲기타 트럭 등 6종이다.
 
화물차 가운데서도 미 자동차업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품목이 ‘픽업트럭’이다. 픽업트럭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으로,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가 유일하게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미국시장 자동차 판매량 1~3위는 포드 F150(39만5244대), 쉐보레 실버라도(27만3652대), 램 픽업(23만1405대) 등이었다. 문제는 현대·기아차가 픽업트럭을 수출하거나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적이 없다는 점. 미국의 연평균 한국산 화물차 수입액도 4만달러 내외로 미비하다. 픽업트럭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톤 트럭’처럼 국가의 문화적 특수성이 반영된 모델이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어 미국시장만 보고 한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면 수익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오는 2020년 현지에서 픽업트럭 생산을 검토 중으로, 현지 생산 제품은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미국자동차안전기준(FMVSS)을 준수한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자동차안전기준(KMVSS)과 동등하게 인정받아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수량이 제작사 별로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어난 것도 한국 자동차 판매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입대수는 포드 8107대, GM 6762대, 크라이슬러 4843대 등으로 기존 허용치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미국산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한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도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우리 자동차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했다. 다만 우리 규제당국의 사후관리 권한과 긴급조치 권한이 붙는다. KC마크(국가통합인증) 표시의무는 유지하지만 KC마크 스티커 방식을 해당 상품 뿐만 아니라 포장재에도 붙이도록 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으로 수혜를 입는 쪽은 미국 자동차가 아닌,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해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자동차업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계는 선별적으로 미국 생산 모델을 한국으로 수출 중으로, 이번 조치로 일본 생산과 비교해 수익성이 낫다고 판단할 경우 수량을 늘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미국이 자국 자동차 빅3의 입김에 한국산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연장에만 집중한 것을 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3국 원료 사용 가능’…섬유 ‘웃다’
이번 개정안의 숨겨진 승자는 섬유·패션업계다.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왔던 원산지 기준인 ‘얀 포워드(Yarn Forward Rule)’ 예외를 적용한 것은 한미 FTA가 처음이다. 얀 포워드는 섬유 완제품을 만들 때 실부터 옷감이나 옷까지 모두 한국이나 미국에서 생산되어야 FTA 특례(수입관세 인하, 또는 철폐)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개정안은 공급이 부족할 경우 일부 원료 품목에 대해 한국이나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아도 예외적으로 원산지를 인정키로 했다. 양국 정부는 관련 인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동남아 등 인건비가 낮은 개도국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FTA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한국산 제품의 수출 확대가 기대된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섬유 수출은 FTA 발효 직전 해인 2011년 13억4238만달러에서 2012년 14억688만달러를 시작으로 2014년 14억3311만달러까지 늘었다. 2015년 13억7160만달러로 상승세가 꺾이더니 지난해 12억7261만달러까지 내려앉았다. 미국이 타국과의 FTA를 확대하면서 한국제품이 누리던 이점이 희석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 들어 반전에 성공해 1~8월 누적 수출액은 9억328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0.9% 증가했다. 이번 개정안이 조기 시행된다면 섬유류 제품 대미 수출이 다시 활기를 띨 전망이다.
 
덤핑·상계관세 계산방식 공개
개정안은 무엇보다 통상 분쟁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 먼저, 반덤핑·상계관세는 조사당국이 현지 조사를 실시할 때 사전 통지를 강화토록 했다. 특히 덤핑·상계관세 계산 방식을 상세히 공개토록 했다. 미 정부는 제로잉과 같은 방식을 통해 수입제품으로 인한 자국기업 피해액을 자국의 입맛에 맞게끔 임의적으로 부풀리고, 이를 통해 수출기업의 미국시장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개정안은 덤핑·상계관세 계산 방식을 미 정부가 공개함으로써 최소한 우리 기업들이 모르고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게 됐다. 철강, 세탁기, 태양광패널 등 우리 주력 수출품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입 규제가 계속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수출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기업 보호에 실질적 기여가 기대된다.
 
문제가 됐던 ISDS(투자자·국가분쟁해결) 제도의 경우에도 한미 FTA와 다른 BIT(상호투자협정)을 동시에 활용해 제소할 수 없도록 했으며,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이거나 근거가 약할 경우 신속히 소송을 각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투자 협정에서 유리한 절차만 가져와 ISDS 소송에 쓸 수 없도록 했다. 이와 함께 투자자가 ISDS 청구시 모든 청구 원인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설립 전 투자와 관련, 사업계획 단계에서 사용한 비용은 보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 232조 적용 예외에 총력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호무역 정책인 ‘무역확장법 232조’와 한미 FTA 간 연계는 이번 개정협상에서 확정짓지 못했다. 232조는 외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FTA와 상관없이 조치할 수 있으나, 체결국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적용을 예외 또는 제외하기도 한다.
 
철강제품의 경우 지난 3월 말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원칙적 합의를 계기로 232조 관세 부가 조치에 대한 국가 면제를 확보했고, 이후 지속적인 설득 노력을 통해 지난 17일 쿼터 대상국 중 최초로 품목예외 승인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기는 정하지 않았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관세 25% 부과 및 국가별 쿼터제 등의 조치를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한미 FTA 개정안을 통해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측 우려가 반영된 만큼 이를 근거로 자동차 232조 면제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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