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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갑질 사태에 뒷전으로 몰린 조종사·승무원 피로 대책
국토부 조종사 피로 경감 대책 입법 5달여 째 지연…피로 대책 차질 불가피
2018-10-14 16:12:03 2018-10-14 17:31:51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국토교통부가 조종사 피로 경감 대책으로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기로 했지만 5달여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국내 항공사 조종사들은 국토부가 승객 안전과 조종사 피로 관리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6월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계획이었다. 국토부는 비행근무시간을 최대 1시간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하고, 항공사와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등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지금도 개정안은 입법예고되지 않은 상태다. 
 
 
국토부가 지난 4월 마련한 개정안의 요지는 비행근무시간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기내 휴식시설에 따라 최대 비행근무시간(비행근무를 보고한 시간부터 마지막 비행 후 엔진을 정지한 시간까지)을 최소 3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줄였다. 현행 항공안전법의 최대 비행근무시간은 조종사 3명인 경우 17시간(기장 2명·부기장 1명 운항)과 16시간(기장 1명·부기장 2명)이다. 개정안은 기내 휴식시설에 따라 비행근무시간을 달리했다. 조종사 3명(기장 2명·부기장 1명)이 운항하는 경우 기내 휴식시설이 1등급(벙커 또는 수평 자세 수면이 가능한 경우)이면, 비행근무시간은 30분(16시간30분) 단축된다. 기내 휴식시설이 2등급(암막커튼이 설치된 좌석에서 수평에 가까운 수면자세가 가능한 경우)과 3등급(등받이를 최대 40도 기울일 수 있는 경우)이면, 비행근무시간은 각각 15.5시간과 14.5시간이다. 
 
개정안은 조종사의 최소 휴식시간도 2시간 늘렸다. 최소 휴식시간을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려 비행 후 피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륙 전 기상악화 등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UOC)이 발생한 경우 현재는 승무시간(이륙부터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2시간 연장할 수 있다. 이륙 전 UOC가 발생하면, 승무시간을 1시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국토부의 개정안을 두고 항공사와 조종사협회를 고려한 절충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마련했던 초안에는 승무시간을 1시간(13시간→12시간)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결국 빠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휴식시설, 시차적응 여부를 고려한 비행시간 관리제도가 도입돼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개정안 입법이 지연되면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항공업계는 지난 4월 한진 총수일가의 갑질 사건 이후 국토부 항공정책실에 업무가 몰리면서 입법이 지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에어·에어인천 등에서 외국인 등기이사 논란이 불거졌고,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과 지연운항 사태로 개정안 검토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태로 구본환 항공정책실장 등 정책 실무진들이 대거 물갈이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조종사협회와 항공사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점도 입법이 지연된 이유로 꼽힌다. 조종사협회는 비행근무시간이 기내 휴식시설에 따라 연동되면서, 기내 휴식시설 도입을 요구했다. 암막커튼 또는 40도 이상 기울일 수 있는 등받이 의자를 설치해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조종사협회의 요구다. 하지만 항공사는 승객의 불만과 비용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입법이 5개월 이상 늦어지면서 조종사 피로관리시스템(FRMS) 도입 논의도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항공안전법 56조에 따라 국내 항공사도 내년 3월30일부터 FRMS 운용이 가능하다. 국토부도 이르면 내년부터 FRMS를 도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FRMS 도입에 앞서, 비행출발·도착 시각, 구간운항 횟수 등을 고려하는 선진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비행근무시간과 휴식시간만 제한하는 이른바 '시간 고도화' 방식을 운영 중 이다. 조종사와 객실승무원의 피로도에 대한 연구, 평가기준, 피로 교육프로그램 등이 개발돼야 한다. 국토부는 관련 데이터를 얻기 위해 2차 조종사 수면다원검사, 객실승무원 피로실태 연구용역을 지난 3월 착수할 계획이었다.  
 
조종사협회는 국토부가 승객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종사협회는 "개정안은 비행근무시간을 30분 줄이는 것 외에 이렇다 할 개선방안이 담겨 있지 않다"며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승객의 안전과 조종사의 피로를 경감할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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