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조사'의 시대와 '개혁'의 시대, 국회특위 30년
입력 : 2018-11-05 06:00:00 수정 : 2018-11-05 06:00:00
20대 국회는 현재 18개 상임위(겸임 상임위 포함)와 6개 특위(인사청문 특위 제외)로 구성돼 있다.
 
국회가 밥값 못한다고 욕 먹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특위는 특히 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중진 의원들에게 위원장 자리 나눠주는 것 말고 하는 일이 없다. 활동비, 특활비 쓰기 위한 조직이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국회 특위’의 시작은 지금과 달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열리면서 ‘특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과 함께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 권력형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1년 간 특위의 시대가 열렸다.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이 주도한 ‘5공 특위’와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이 주도한 ‘광주 특위’의 경쟁적 활약상은 바뀐 시대를 대변하는 민주화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다.
 
외신에서나 보던 청문회가 연일 열렸고 전두환, 장세동, 전경환 등 직전 정부의 실세와 정주영 등 재벌 회장들이 줄줄이 증언대에 섰다. 5·18 당시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에도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일해재단은 무산됐고 전두환은 백담사로 갔으며 검찰은 ‘5공비리 특별수사부’를 설치해 전경환, 장세동 등 47명을 구속했다. 미진함은 있었지만 6월 항쟁 2년 만에 5공과 신군부가 정치적, 사법적으로 처벌 받았다. 국민들의 호응도 폭발적이었던 것이 심야까지 진행된 청문회는 티비를 통해 생중계 됐고 시청률은 40%를 넘나들었다. 공포의 대상이던 신군부와 국가 폭력은 두 특위를 통해 조롱과 단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등장한 인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20대 국회에서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아니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다. 1988년의 두 특위에는 ‘조사’라는 단어가 포함됐었다. 2018년의 두 특위에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있다. 진상을 ‘조사’해야 하는 시대가 30년 만에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위가 처한 상황은 훨씬 더 나빠졌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하늘과 땅 차이다. 정개특위, 사개특위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국민들이 훨씬 많을 것 분명하다.
 
게다가 명확한 거악의 가면을 벗겨내는 것보다 새로운 제도를 합의해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5공의 비리와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절대선에 가깝다. 하지만 소선거구냐 중대선거구냐, 국회 의석수를 늘리느냐 마느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느냐 마느냐, 공수처를 설치하느냐 마느냐는 선과 악의 대결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와 일반 대중의 인식차도 크고 지역별, 계층별, 연령별 인식차와 이해관계도 엇갈리는 쟁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사자격인 정치인들도 “이게 되긴 되겠나. 시간만 끌다 말겠지”하면서 심드렁한 표정이다. 하지만 만들어 내야 한다. 두 특위가 특정한 정답에 빨리 합의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지만, 두 특위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요구는 당위에 가깝다.
 
5공 특위와 광주 특위 이후 30년, 조사가 필요한 시대에서 개혁이 필요한 시대로 변했다. 진보한 것이다. 30년 전 두 특위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이뤄진 변화다. 지금 개혁안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30년 후 국회에는 똑같은 과제를 짊어진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가 설치될 것이다.
 
그건 후세에 너무 부끄러운 일 아닌가?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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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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