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한편으로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포항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 지방 자치제가 본격 가동하면서 포항에는 일종의 도시 성장 연합의 정치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포항의 성장 지향적 통치 연합은 기본적으로 포스코와 포항 간의 협력과 공생을 근간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것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2000년 1월에 포항시, 경상북도, 포스코, 포항공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상공회의소 등이 공동으로 재단법인 포항테크노파크를 설립한 일이었다. 포항테크노파크는 바로 청암의 아이디어였다. 자본금 465억원 가운데 포스코가 300억원을 출연하였으며 이는 2002년에 완공되었다. 포항테크노파크의 준공은 무엇보다 탈산업화 시대를 맞이하여 철강 도시 이후 포항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 밖에도 포항 시내와 철강공단을 잇는 섬안큰다리 건설, 환호해맞이 공원 조성, 포항 국제 불빛축제 등에 포스코는 목돈을 댔다. 포항 시장이 “포스코에서 우리에게 포항말로 ‘뭉티기돈’을 주었다”고 인사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전경. 사진/뉴시스
물론 성장 연합의 정치는 기성의 지배 엘리트의 영향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령 포항테크노파크 건설이나 폐기물 소각장 설치 등 각종 지역 현안과 관련하여 저항적 시민사회 단체들이 적극 대응했지만 결국에는 포스코, 포항시 및 지역 엘리트들의 이해가 관철되었다. 말하자면 이들 간에 견고한 ‘정책 네트워크 레짐’이 형성되어 저항 엘리트들에게 예방적(Preemptive) 권력을 행사해 왔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저항적 엘리트의 상징이자 구심점이었던 포항지역발전연구소도 성장 연합의 정치에 동조·동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 조직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대환은 “그동안 나는 진보적 세계관의 조정을 거쳤다”고 술회한 바 있다.
도시 성장 연합으로 귀결된 포항과 포스코의 공존과 융합이 포스코에 대한 포항의 종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선 전형적인 기업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포항이 행정, 재정적으로 포스코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의 지원에 대거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지방 정부의 입장은 역설적으로 포스코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과 우월한 협상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포스코의 입장에서 성장 지향적 정치에 동참한 계기는 기업의 경제적 이윤이라기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스코와 포항의 협력적 공생 관계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980년대 말 무렵만 해도 포항 시민들은 포스코의 지역 발전 기여도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었다. 1989년 포항의 발전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비록 포항이 다른 중소 도시들에 비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포스코에 대해서는 매우 불만(23.3%)과 불만족(46.7%)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이후 지역 사회에 대한 관심과 협력이 크게 늘어난 결과, 2001년 조사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폭 증대하였다. 지역 사회에 대해 포스코의 역할에 대해 매우 잘 한다(10.1%), 잘 한다(26.7%), 보통이다(37.4%)라는 평가가 나타난 것이다.
(자료: 박태준과 지방, 기업, 도시 - 포철과 포항의 병존과 융합,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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