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⑫평화국가의 '용산 유엔시티' 구상
동아시아 패권경쟁이 벌어졌던 전장을 평화의 메카로 만들어야
6자 회담의 상시적 사무국을 대한민국에 두는 담대한 구상 실현
입력 : 2019-01-07 07:00:00 수정 : 2019-01-07 07:00:00
2019년 새해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지난 100년과 미래의 100년을 거시사적으로 보면 어떤 통찰을 줄까. 2019년은 1945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과 미래에 올지도 모를 제3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Interwar Period)에 해당한다. 누구나 예상하듯 만약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전쟁 당사자는 미국과 중국일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원인은 세계패권을 장악하려는 각축 때문이다. 이때 우리나라는 어떤 미래를 주도적으로 펼쳐낼 수 있을까. 100년 전 무기력하게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약소민족의 수모를 넘어, 미래 100년에는 세계사적으로 어떤 비전과 전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용산 유엔시티와 세계평화 주도하는 미래 100년 비전

미군기지가 있었던 서울 용산에 국제연합(UN) 시티를 조성하는 것은 어떨까. 세계평화의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고유한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군기지로 대변된 용산은 100여년 동안 동아시아 패권경쟁의 전장이었다. 유엔시티 구상은 특정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게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게 미래 대한민국의 비전이라는 의미다. 용산 철도기지창 부지를 유엔시티로 정하고 유엔기구 등을 유치한다면 한국은 세계평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은 유엔시티를 조성,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9개의 유엔기구 사무소를 유치한 바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2000년대부터 유엔시티를 조성,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9개의 유엔기구 사무소를 유치했다. 사진/픽사베이

용산의 아픈 역사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에 개입하고자 위안스카이 군대를 보냈는데, 이들은 용산에 주둔했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후 용산에 주둔했다. 일본군은 1945년 미군에 자리를 뺏길 때까지 머물렀다. 2018년 6월29일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할 때까지 서울 한복판인 용산은 100년 넘게 외국군 주둔지가 됐다.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에는 21세기 글로벌 공동체와 조응할 수 있는 미래비전이 필요하다. 단순히 외국군 주둔지를 반환하는 수동적 태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다음 100년을 위한 중요한 구상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국내적으로 지난 20년간 용산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탐욕적 공간이었다. 용산 참사와 용산 개발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하지만 개발 프로젝트는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 미래 100년을 설계하려면 서울 중심부인 용산에 새로운 상상을 펼쳐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와 철도기지창 부지를 탐욕이 아닌 지역민의 사익과 글로벌 공동체의 공익이 공존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용산 유엔시티 구상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글로벌 공동체까지 3개의 동심원 전략으로 확대할 수 있다. 과거 용산에 주둔했던 미국과 중국은 21세기에도 세계패권을 놓고 경쟁한다. 반면 한국은 용산을 유엔시티로 만들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전략
 
미래연구에 따르면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빙기(Glacial Period)와 간빙기의 흐름과 비슷하다. 지금의 인류는 신생대 충적세에 살고 있다. 또 현재는 빙기와 빙기 사이에 있는 간빙기다. '마지막 빙기'는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에 끝났고 다음 빙기가 올 때까지 지구는 온난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5만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빙기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빙기의 도래 시기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3차 대전도 앞으로 10년 이내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100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용산 유엔시티 구상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글로벌 공동체까지 3개의 동심원 전략으로 확대할 수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우선 자연과학의 연구를 통해 지구가 탄생한 후 빙기와 간빙기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역사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이는 현재와 가까운 시점일수록 더 정확하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전개도 빙기와 간빙기의 서술처럼 보인다. 가장 최근의 전간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 사이다. 패권안정론을 주창한 로버트 코헤인은 강력한 패권국가가 존재해야 평화로운 국제질서가 유지된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패권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공공재다. 패권을 세계에 제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국가에 의해 안정성을 가질 때 세계평화도 담보될 수 있다. 20세기 초 영국은 19세기처럼 패권국가를 수행할 의사는 있으나 능력이 없었다. 반면 미국은 패권국가의 능력은 있었으나 그럴 의사가 없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고, 그 틈에 일어난 게 2차 대전이다. 
 
2차 대전에서 독일과 일본 등은 미국의 패권에 대항했으나 철저하게 패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과 경쟁했으나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몰락 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가의 지위를 갖게 됐다. 패권안정론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공공재로서의 패권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질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비록 중동 등에서 국지전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평화롭다. 조금 더 현실주의적으로 보면 20세기 후반의 미국은 패권을 공공재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다른 국가들에 강요하거나 동의를 얻어내는 방법을 쓴다.

미래연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지금은 전간기의 평화로운 시기다. 그러나 전후 패권질서의 현실은 냉정하다. 미군은 2차 대전 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과 위성들은 세계 곳곳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유엔이 국제기구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미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승전국의 패권적 지위를 고려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역 간 균형으로 생긴 국제기구들은 강대국 대신 그 사이에 끼인 약소국에 위치한다. 스위스에 유럽의 국제기구가 많은 이유도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해서다. 벨기에 브뤼셀에 유럽연합 대표부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 본부가 미국에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평화와 공존을 위해서라면 장기적으로는 유엔 등 국제기구를 패권국가 이외의 지역에 놓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생겨날 글로벌 국제기구들은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그 중간지대인 대한민국에 두는 게 적절하다. 용산 유엔시티가 대한민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전략으로 유의미한 이유다.
 
미중 패권경쟁과 '예정된 전쟁'…이븐 할둔의 정반대의 시각도

2차 대전 이후의 평화는 중국이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새로운 패권경쟁의 시작이다. 이 문제를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권력과 정치의 시각으로 보면 전간기 평화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최근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문명과 중국문명의 전쟁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 그 갈등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세계 패권국가의 경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보여준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지중해 패권을 다투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게 투키디데스의 분석이다. 21세기의 패권경쟁도 전통적 강국인 미국과 신흥강국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다시 세계대전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운명도 거기 달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새로운 패권경쟁의 시작이다. 이 문제를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권력과 정치의 시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화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사진/뉴시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 패권경쟁이라는 거시사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문명충돌을 넘어 3차 대전이나 국지전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국의 경쟁은 적어도 100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미국은 전통 제조업에서는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데이터 경제와 플랫폼 산업에서 여전히 구글과 애플, 아마존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다국적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예상될 기술혁신과 그에 따른 기계와 인간의 결합에서 가장 활발한 진화가 일어나는 곳도 미국이다. 반면 중국은 전통 제조업은 물론 최첨단 과학과 기술혁신에도 속도를 낸다. 이를 근거로 전망하더라도 장차 미국과 중국은 상당 기간 패권국가의 지위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문명사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될 때 가장 피해를 볼 지역으로 한반도를 꼽는다. 그러나 정반대 시각도 있다. 거시사를 패권국가의 관점에서 본 흐름은 투키디데스와 아놀드 토인비, 새뮤얼 헌팅턴과 그레이엄 엘리슨으로 이어졌다. 반면 <역사서설>을 쓴 이븐 할둔은 문명의 변방과 점이지대(漸移地帶)에서 새 문명이 출현한다고 봤다. 예컨대 미국문명과 중국문명의 단층선에 있는 한국이 21세기 글로벌 융합문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미래 100년을 구상할 때도 두 관점 사이의 균형 잡힌 전망이 필요하다. 지난 100년간 한국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종속변수였다. 하지만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서 조금 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담대한 용산 유엔시티 전략과 포용국가론
 
6자 회담을 동아시아 평화의 기본 틀로 만드는 것도 대안이다. 6자 회담은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창구다. 이를 동아시아 문제와 다양한 글로벌 쟁점을 다루는 정치적 공간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회담의 참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은 사실상 세계 정치와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국가다. 이들의 합의는 곧 글로벌 컨센서스가 될 수 있다. 6자 회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아시아 평화의 기본 틀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상시적 사무국을 대한민국에 두는 담대한 구상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중국과 일본, 미국 등 외국군이 주둔한 용산을 유엔시티로 조성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새로운 100년의 대안이자 아시아 포용과 세계 포용의 비전이다. 사진/뉴시스

포용국가론을 국내 문제를 넘어 세계평화 중심국가 비전으로 넓힐 수도 있다. '포용'이 한반도 포용과 아시아 포용, 세계 포용으로 진화할 수 있는 경로를 새로운 100년의 비전에 녹여야 한다. 과거 100년 동안 외국군이 주둔한 용산을 유엔시티로 조성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새로운 100년의 대안이자 아시아 포용과 세계 포용의 비전이다. 미래 100년에는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중심국으로 등장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이 필수다. 덴마크의 유엔시티 전략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글로벌 전략으로 만들 지혜가 필요하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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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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