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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코드, 경영간섭 신호탄"…재계, 자율성 침해 논란 제기
연금사회주의·노후자금 손실 우려도
2019-01-16 20:00:00 2019-01-16 20:00:00
[뉴스토마토 이종호·양지윤·권안나 기자]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이행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수탁자 책임 원칙'을 분명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산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코드)은 기관투자자가 자금주인의 이익을 위해 주주활동 등 수탁자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방침이 자칫 경영 침해 수준을 넘어 '연금사회주의' 논란까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2019년 첫 기금위인 오늘 국민연금의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논의가 수탁자책임원칙을 이행하는 첫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며 "향후에도 수탁자 책임 원칙을 바탕으로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금위 결정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내달까지 관련 내용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하면서 3월에 있을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가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이번 주총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임기 종료에 따라 연임 반대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향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을 넘어 더 많은 기업의 경영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향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에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한진의 사례와 같이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오너십에 리스크가 큰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될 전망이다.
 
먼저 현대차 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있어 국민연금의 결정이 누구보다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주식의 9.45%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차는 8.70%를 보유한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현대글로비스의 주식도 9.98% 보유하고 있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서 국민연금은 가장 영향력 있는 주주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삼성측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현대차지배구조 개편안에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너 리스크를 안고 있는 대림산업 역시 국민연금의 지분율(13.54%)이 낮지 않지 않아 스튜어드십코드의 영향을 받을 기업으로 거론된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1월 이해욱 부회장 등 오너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지배구조를 해소하고 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각종 부정적인 이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2년 연속 갑질로 국회 국정감사에 소환되기도 했다. 오너 리스크 해소가 요원하다는 점이 시장에 불확실성을 안겨주는 만큼 스튜어드십코드의 도입 대상의 우선순위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배당성향이 높지 않은 기업 역시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국민연금의 경영 간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일본 등 해외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사례에 따르면 도입 초기에 기업들의 배당성향이 높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국내 기업 중에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저배당 중점관리 대상으로 언급한 남양유업과 현대그린푸드가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언급된다. 이밖에도 10% 이상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지 않아 관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주요 대기업으로는 △신세계(13.54%) △호텔신라(11.72%) △LS(11.67%) △삼성SDI(11.62%) △삼성전기(10.44%) 등이 있다. 이들 역시 잉여현금흐름(FCF) 대비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에 해당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구조상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 돈으로 주식을 사서 기업 경영에 적극 나서는 것은 작게 말하면 관치의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확장하면 연금사회주의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공적 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결권 행사를 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노후 자금을 어떻게 잘 관리할지가 첫번째가 돼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경우 수익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라는 공적연금의 역할상 적절한 방안일지를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모펀드 규제 완화도 주주활동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전문투자형사모펀드와 경영참여형사모펀드를 갈랐던 규제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경우 주식을 10% 이상 보유해야했으며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10% 이상 보유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됐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위해 이런 규제를 폐지하고 사모펀드 운용규제를 일원화 했다.  
 
이종호·양지윤·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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